등록 : 2014.07.16 18:24
수정 : 2014.07.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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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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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체육을 부탁해
이춘재/스포츠부장
나경원 전 의원이 2013 평창스페셜올림픽조직위원장을 맡았다는 소식을 2년 전 들었을 때 반가웠다. 스페셜올림픽은 지적장애인들의 스포츠 대회다. 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망가진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지만 장애인 체육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처지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장애인올림픽 출전을 위한 합숙훈련비가 모자라 방이 딸린 식당에서 숙식했던 때가 불과 몇년 전이다. 경기도 이천 장애인종합훈련센터가 문을 연 뒤로는 사정이 많이 나아진 줄 알았다. 지난 10일 장애인국가대표 은퇴 선수들은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10월18일 개막)에 출전하는 후배들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1000만원을 모아 전달했다. “대회 조직위의 자금사정이 열악해 후배들이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는 게 형편이 넉넉지 않은 그들이 쌈짓돈을 낸 이유다.
호불호를 떠나 나 전 의원의 인지도는 장애인 체육에 대한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여당 최고위원 등을 거치면서 쌓은 인맥은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다. 그는 평창스페셜올림픽을 준비하면서 100억원이 넘는 협찬을 받아내 기대에 부응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한테 느끼는 거리감도 그는 쉽게 극복한 편이다. ‘장애아 알몸 목욕 노출’ 논란으로 큰 상처를 주긴 했지만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을 둔 처지가 공감대를 이룬 것이다. 장애인 체육계는 나 전 의원이 황연대 전 장애인체육회장의 뒤를 잇기를 바랐다.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의사가 된 황 전 회장은 국제무대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장애인올림픽대회 최우수선수(MVP)에게 주는 상이 그의 이름을 딴 ‘황연대 성취상’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나 전 의원을 밀어줬다. 반 총장은 4월28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스포츠개발평화회의 기념식에 나 전 의원을 초청해 연설하도록 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존 애시 유엔총회 의장 등 국제 스포츠·외교 무대에서 힘깨나 쓰는 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였다. 필립 크레이븐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위원장을 제치고 집행위원에 불과한 나 전 의원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한 장애인 체육계 인사는 “나 전 의원이 차기 아이피시 위원장에 출마한다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7·30 재보궐선거에 여당 후보로 출마한 나 전 의원을 바라보는 장애인 체육인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그의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에 정치판으로 돌아가버렸다. 나 전 의원은 ‘친정’의 간곡한 부탁에 마지못해 출마한 것처럼 말하지만, 6·4 지방선거 때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달라”며 여당 지원 유세에 나선 전력이 있다. ‘힘센’ 여당 의원이 되면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더 많이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농구연맹(KBL) 총재를 그만둔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는 3년 전 총재 선거 때 농구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처럼 큰소리쳤지만 제대로 지킨 게 별로 없다. 한 의원은 “국회 활동 하느라 케이비엘 총재직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나 전 의원에게 부탁한다. 혹시라도 금배지를 달게 되면 장애인 체육 지원에 더욱 매진하기 바란다. 그래야 ‘정치적 재기를 위해 장애인 체육을 이용했다’는 비난을 잠재울 수 있다. 장애인 체육은 장애인 복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버전업’된 나경원을 보고 싶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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