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23 18:14
수정 : 2014.07.2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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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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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월드컵을 제패한 독일의 요아힘 뢰프 감독은 “10년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독일 축구를 세계 최강의 ‘스마트 전차’로 거듭나게 한 힘 가운데 두 가지가 눈에 띈다. 결승전 결승골을 넣은 마리오 괴체(22) 등을 키운 유소년 시스템, 월드컵 최다득점(16골)의 주인공인 미로슬라프 클로제(36·폴란드계) 등 문화·인종적 다양성 확대가 그것이다. 독일팀 공격의 시작점인 메수트 외질(26)이 이 둘의 교차 지점에 있다. 외질은 터키계 이민자 2세이자 유소년 시스템이 키워낸 대표적 선수다.
외질이나 클로제는 ‘돈질’로 다른 나라에서 스카우트한 스타가 아니다. 독일 사회가 발굴해 키웠다. 루카스 포돌스키(폴란드계), 슈코드란 무스타피(알바니아계), 사미 케디라(튀니지계), 제롬 보아텡(가나계)도 마찬가지다.
좀더 들어가 보자. 독일팀 뒤엔 독일축구협회(DFB)가 있는데, 회원이 700만여명이다. 독일 인구의 8.7%다. 단일 스포츠 조직으론 세계 최대인 이 협회에 속한 아마추어 클럽만 2만5000여개다. 이들 클럽 회원의 50%가 그 뿌리를 이주노동자에 두고 있다. 최종 엔트리 23명 가운데 6명(23%)이 이민가정 출신인 독일팀의 선수 구성을 일과성 이벤트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축구 대표팀은 독일 사회통합의 가장 위대한 동력의 하나”라는 현지 언론의 진단을 과장이라 치부할 일이 아니다.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이는 나라다. 2012년 40만, 2013년 43만7000명을 받아들였다. 인구의 19%(1520만명)가 이민자다. “독일은 이민국가가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던 헬무트 콜 전 총리의 25년 전 선언은 더는 진실이 아니다. 독일은 2000년 국적법을 바꿔 독일 땅에서 태어난 이민자의 아이를 출생과 동시에 독일 시민으로 인정한다. 이렇듯 독일은 유럽연합(EU)을 뒤흔드는 대량 이민이라는 갈등의 잠재적 균열선에서 사회 발전과 활력의 불씨를 찾으려 애써왔다.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는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통찰에 빗대자면, 통독 이후 독일은 쉼 없이 진화하고 있다. 젊고 유능한 이민자(2012년 독일 이민자의 34%가 대졸 이상 학력 소지자다)가 몰리고, ‘세계에서 가장 매력·인기있는 나라’ 1위(2013년 <비비시>(BBC) 여론조사)로 꼽힌 건 이런 진화의 성과다.
무릇 사람 사는 세상엔 숱한 갈등의 균열선이 존재한다. 갈등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적대와 파괴의 도화선일 수도, 발전과 통합의 촉매일 수도 있다. 갈등을 다루는 태도가 그래서 중요하다. 한 사회가 제도 내부의 존재를 밖으로 밀어내려 하면 갈등의 악순환이, 제도 외부에 방치되던 존재를 안으로 받아들이려 하면 갈등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전자가 퇴화라면, 후자는 진화다.
지금 한국에선 독일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라, 15년간 합법 노조이자 교육개혁의 한 축을 이뤄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노조 아님’ 딱지를 붙여 제도 밖으로 밀어내며 갈등의 악순환을 애써 부추기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노동자의 절반에 이르는 이들에게 ‘비정규직’의 굴레를 씌워 무권리의 수렁에 방치하는 한국 사회의 무신경과 몰윤리성을…. 하지만 안과 밖 사이에 철의 장막을 치고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애써 갈등과 적대의 악순환을 부추기며 ‘안’을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면,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활력은 빛의 속도로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독일에서 배워야 할 건 대통령이 입에 달고 사는 ‘통일 대박’의 망상이 아니다.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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