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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8 18:47 수정 : 2015.01.18 18:48

지난 연말, 메일 한 통을 받았다. 12월31일치 1면에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 <미생>의 장그래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내는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쓴 기사를 읽고 한 독자가 보낸 것이었다. “장그래를 빗대어 장그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희망을 갖게 만드는 것이 과연….”

현실의 벽은 훨씬 높다는 뜻일지 모른다. 또 장그래만큼 능력도 있고 노력하는 비정규직이 실제는 그리 많지 않다고 따졌던 것일 수도 있다. 잊고 있던 그 메일을 지난주 종영한 드라마 한 편과 한 후배 기자 때문에 다시 찾아봤다. 앞부분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사는 진실만 그리고 진실만 모두에게 전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13년 전 공장 화재사건 당시 언론의 마녀사냥식 보도로 희생된 소방관의 아들은 기자가 되어 당시 보도를 주도했던 언론계 대선배와 맞선다. 그 대선배, 엠에스시 방송사의 송차옥 사회부장은 “팩트보다 임팩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일한다. 방송사 대주주인 기업가의 요구에 따라 송 부장은 팩트를 ‘만들어내기까지’ 해왔다.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송 부장의 딸이자 현직 기자가 그 반대편에 서는 게 상징하듯, 이 드라마에서 ‘사실’(팩트) 보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팩트조차 챙기지 못하는 오보가 속출하고 ‘기레기’라는 말이 보통명사로 쓰이는 시대에 살고 있는 터라 드라마에 열광한 이들 가운데엔 나를 포함한 기자들도 적잖았다.

하지만 가치 있는 보도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 ‘팩트보다’는 아니더라도 ‘팩트만큼’ 임팩트는 중요하다. 팩트를 놓치지 않고, 조작하지 않는 것이 언론과 기자들이 해야 할 일의 전부도 아니다. 뉴스 생산자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광속의 속도로 정보가 전달되는 요즘 단순히 팩트만 나열한다고 언론이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이다.

‘기사는 진실만 말해야 한다’는 문구는 드라마에서처럼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단순한 정확성’만 갖췄다고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말이다. 진실은 훨씬 더 복잡한 문맥 속에 있고, 때로는 선악으로 나뉠 수 없는 회색 공간 어디쯤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론 “진실은 우리를 설득해 특정한 주장을 믿게 하는 판단일 뿐”이라는 회의론을 펼치는 언론학자도 있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같은 책에도 ‘진실’이란 챕터에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운 원칙’이란 부제가 붙어 있지 않나.

그럼에도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진실은, 거짓말을 않는다는 피노키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실을 올바르게 수집’하고 ‘그 사실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 아닐까. 최근 한 기자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 열린 한국여기자협회의 올해의 여기자상 시상식에서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기사로 상을 받은 <한겨레> 박유리 기자는 “큰 상을 연달아 받고 마음이 울렁거렸다. 근데 몇 시간 전 이 문자를 받고 마음이 무거워졌다”며 단상 위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읽었다. “저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라고 함니다. 차자봽고 축하라도 해드려야하는데 … 앞프로도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저의한태 더 없는 힘을 시러주신거 저의 피해자 분들이 공감함니다.… 에고. 제가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1학년 1하기가 전부라서 받침문법이 엉망이지요? 이해바람니다.”

김영희 문화부장
박 기자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사망자만 513명. 취재와 기사를 쓰는 몇달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2015년 난 살고 있다. 내 선택으로 썼고 또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의 피해로 난 상을 받고 칭찬을 받는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형제복지원법안의 통과를 바랐다.  

김영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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