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22 18:33
수정 : 2015.07.22 18:33
지난 20일 외신을 통해 전송된 한 장의 사진에 가슴이 뭉클했다. 동료들로부터 물세례를 받는 여자 골퍼와 그의 캐디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등장하는 사진이었다. 우승의 감격이 복받치는 듯 골퍼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고 그를 바라보는 캐디는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캐디의 표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무려 156번의 도전 끝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엘피지에이) 투어 대회 첫 우승을 신고한 최운정과, 딸의 골프백을 메고 7년여 동안 함께 골프장을 누빈 아버지 최지연씨다. 경찰관이었던 최씨는 딸이 2007년 미국 2부 투어에 진출하자 경찰을 그만두고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프로골퍼가 되겠다는 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였다. 한때 엘피지에이에서 한국의 ‘골프 대디’들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지나친 훈수로 경기 흐름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강압적인 훈련 방식과 과도한 사생활 개입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최씨 부녀의 사연은 엘피지에이에서 미담으로 통한다. 엘피지에이 홈페이지와 현지 언론은 아버지 최씨가 “딸이 우승하면 캐디를 그만하겠다”고 약속한 사연을 전하며 최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감동적’인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다.
최씨 부녀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감동적인 소식은 또 있었다. 지난 19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끝난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한 조기성과 그의 어머니다. 뇌성마비 장애인 조기성은 남자 자유형 S4 부문(하반신 운동기능이 없는 등급) 100m와 2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고무적인 건 100m에서 대회 신기록을 세웠다는 점이다. 뇌성마비와 같은 선천적 장애인은 절단 장애 등의 후천적 장애인에 견줘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운동에 대한 기억이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조기성이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는 것은 그만큼 훈련량이 많았다는 얘기다.
장애인이 수영을 할 수 있는 시설은 국내에 그리 많지 않다. 조기성이 경기도 광주의 집에서 서울까지 매일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왕복하며 훈련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에 선정되기 전까지 엄마가 겪은 마음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수영은 숨기고 싶은 장애 부위를 다 드러내야 한다. 엄마는 아들이 세상의 불편한 시선에 익숙해지도록 일반학교에 보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큰 사달이 났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처음 본 짝꿍이 울면서 선생님한테 짝을 바꿔달라고 떼를 썼다. 마음이 크게 상한 기성이는 밖에 나가길 꺼렸다. 기성이를 다시 수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바로 엄마였다. “철없는 애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다 어른들 탓이죠.” 지난 21일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귀국하는 아들을 마중 나가던 엄마는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장애인스포츠에서 엄마의 헌신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거동이 불편하고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선수들에게 엄마는 도우미이자 매니저다. 훈련 일정을 짜고 장비를 관리하고 때로는 심리치료와 멘토 구실까지, 엄마가 해야 할 일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아이의 운명을 잘 알고 있기에 살아 있는 동안 힘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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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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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만큼이나 가슴 답답한 요즘 최지연씨와 기성 엄마의 사연은 한줄기 소나기처럼 시원했다. 어쩌면 이 땅의 엄마, 아빠 모두가 아이들의 캐디요 매니저가 되기를 요구받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지니 말이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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