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05 18:30
수정 : 2015.08.05 21:04
엉뚱한 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재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꼼수’가 어른거린다. 나꼼수의 진행자 정봉주와 김어준·주진우는 모두 재판을 받았는데, 조희연의 소송과 쟁점이 흡사하다. 정봉주는 이명박 후보의 비비케이(BBK)를 집중 공격했다가, 김어준·주진우는 박근혜 후보의 동생 박지만의 살인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가 기소됐다. 결과는 달랐다. 정봉주는 징역 1년을 꼬박 살았고, 김어준·주진우는 무죄를 받았다.
조희연의 1심 재판장은 왜 유죄인지를 설명하면서 정봉주의 대법원 판결을 끌어다 썼다. “사실이 진실한지를 확인하는 일이 시간적, 물리적으로 사회통념상 가능하였다고 인정됨에도 그러한 확인의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자꾸 주장하는 건 그저 상대방을 흠집내려는 고의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너무 기계적으로 대입했다는 느낌이 든다. 정봉주 건은 이미 검찰이 ‘증거가 없다’고 밝힌 상황에서 새로운 의혹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재탕삼탕 우려먹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조희연 건은 ‘고승덕이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혹이 있으니 해명하라’고 요구한 수준이다. 그나마 두세번 얘기해 보다가 사흘 만에 접었다.
1심 재판부는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는 검찰도 공식 확인하는 데 석달이 넘게 걸렸다. 조희연이 무슨 수로 확인하겠는가. 그보다는 ‘영주권 보유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조희연이 웬만큼 책임을 다한 것 아닐까?
김어준·주진우의 1, 2심 판결문도 구해서 읽어봤다. 두 사람의 2심 재판장인 김상환 판사는 조희연의 2심 재판장이기도 하다. 김·주의 과거 판결문에서 조희연의 미래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인 것이다. 1, 2심 모두 무죄였지만 1심 판결문이 14쪽인 반면 2심 판결문은 44쪽짜리다. 1심 결과를 단순히 추인한 수준이 아니라, 선거 때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놓고 2심 재판부가 깊게 고민한 흔적이 새겨져 있는 판결문이다.
김어준·주진우의 의혹은 어마무시하다. 그런데도 김 판사는 모든 음모론에 대해 “의혹의 제기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그는 “선거 국면에서 국민들에게 … 필요한 정보나 의견을 제공하기 위한 의도 등으로 이뤄지는 언론 활동은, 다른 중대한 헌법적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닌 한 이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 정도면 표현의 자유를 가장 넓게 보장해주는 재판부로 봐도 될 듯하다.
물론 어디까지를 ‘언론’으로 볼 거냐는 문제가 따른다. 아무리 허접스럽더라도 종이신문에 1단짜리 기사가 나가고 조희연이 그걸 흔들며 해명을 요구했다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희연의 근거는 ‘트위터’였다. 1심 재판부는 트위터를 그저 ‘소문’으로 일축하고 말았다.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한 최경영 기자는 6만6000명의 트위터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의 질문은 2000번 넘게 퍼지고 퍼졌으니 수백만이 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트위터가 ‘대안 매체’가 아니라면 ‘전통 매체’에 속해 있는 나도 민망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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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디지털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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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일 전 재판을 한번 구경 갔다. 재판정이 찜통 같아서 들락날락했는데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여든둘인 한승헌 변호사가 의관정제하고 방청석 맨 앞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재판장도 깍지 낀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내내 진지한 자세로 재판을 진행했다. 거기서 ‘희망’을 보았다면 너무 감상적인 것일까. 내일(7일)이 결심공판이니 8월 안으로는 선고가 날 것이다. 타들어가는 땡볕을 식혀줄 소나기 같은 선고를 기대해 본다.
김의겸 디지털부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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