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10.28 18:33 수정 : 2015.10.29 10:27

[편집국에서] / 김의겸
10여년전의 `천신정' 패기가 노무현 당선 낳았다

2010년 ‘민주당, 5년 만에 돌아와 보니’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의 정세균 대표, 정동영 의원에게 ‘협량해졌다’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댔다. 그러고는 얼마 되지 않아 사회부장으로 옮겼으니 실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다시 새정치민주연합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국회 출입증도 받았다. 5년 전에는 40대였는데 이제는 50줄이다. 그사이 ‘꼰대’가 됐나 보다. 지난번에는 늙은 의원들이 문제가 있어 보이더니, 이번에는 젊은 의원들이 패기가 없어 보인다.

김기식 의원한테 들은 얘기다. 돈을 받은 혐의로 박기춘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올라왔는데 원내 지도부가 처리를 미적거리길래 의원총회에서 한마디 했단다. 방탄국회 하자는 거냐고. 큰맘 먹고 한 말인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머쓱했다. 이틀 뒤 국회 본회의장에서 투표가 진행됐고 김 의원은 참관인 자격으로 투표함 옆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의총장에 모여 있을 때는 아무 말 안 하던 의원들이 투표소에서 일대일로 만나자 하나같이 칭찬을 하는 거다. “내가 하고 싶던 말인데 대신 해줘서 고마워.”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던 거다. 충고하는 의원도 있었다. “말은 시원하게 잘했는데, 공천에는 불리할 거야.”

여의도 정가에는 공천의 기본공식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열명의 친구를 만들기보다 한명의 적을 만들지 말라’다. 아무리 도와주는 사람이 많더라도 누구 하나가 ‘저놈은 죽어도 안 돼’ 하고 찍어내리는 순간 공천은 물건너간다는 얘기다. 그러니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입니다. 납작 엎드려야죠”라고 말하는 어느 초선 의원이 밉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당내 분열은 의원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 “나 같은 초선이 무슨 힘이 있어. 내가 당내 문제에 대해 말하면 다들 친노냐 비노냐만 따지지 내 말에 귀 기울이겠어? 말해봐야 분란만 일으키지.” 당의 불화가 깊어지니 젊은 의원들은 조심스러워하고, 그 얌전함은 다시 당의 반목을 심화시키는 ‘침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거다. 누군가 고리를 끊어줘야 한다. 시시비비를 가려서 어느 한쪽을 제압하든지 아니면 완력을 써서라도 양쪽을 화해시켜야 한다. 손 놓고 지켜보다가는 다 같이 침몰한다.

장쉐량은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장제스를 구금하는 시안사변을 일으킨 인물이다. 당내 반역을 일으켜 장제스로부터 내전정지·일치항일을 약속받았다. 중일전쟁 승리의 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38살이었다.

문재인, 안철수를 끌어내서 밤샘 토론회라도 한번 열어보라. 그것도 안 되면 당내 ‘큰손’들을 모조리 어디 수녀원에라도 가둬놓고 합의를 도출할 때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초·재선만으로 힘이 부치면 대구, 부산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김부겸, 김영춘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지금 두 사람만한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창조’는 경제에만 갖다붙이라고 있는 단어가 아니다. ‘창조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멀리 중국까지 갈 필요도 없다. 10여년 전 이른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 이끈 쇄신은 무기력하기만 하던 민주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국민참여경선을 처음으로 도입했고 결국 노무현 당선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쇄신이 없었다면 아마 이인제가 이회창에게 무난하게 지는 경로를 밟았을 것이다. 그때 천신정의 나이가 마흔예닐곱이었다. 혼자서는 힘들지만 ‘똘똘한 놈 세 명’만 모이면 거사를 치를 수 있다.

김의겸 선임기자
가끔씩 부음란에 전직 국회의원들의 사진이 실린다. 4~5선씩 했다는데 잘 모르는 정치인이 태반이다. 국회깨나 출입했다는 기자가 그러니 일반인들은 더할 것이다. 정치, 길게 한다고 장땡이 아니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편집국에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