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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30 16:22 수정 : 2016.10.31 21:19

김영희

사회에디터

# 2013년 8월25일 일요일,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청와대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이틀 전, 대통령이 수첩을 펴고 언급한 체육국장과 과장 문제 때문이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나쁜 사람” 사건은 이렇게 아프리카로 막 출장 간 장관이 휴일에 독촉 전화를 받을 정도로 급박하게 전개됐다.

# 그로부터 넉 달 전, 42회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가 끝난 다음날부터 심판진은 경북 상주서에 불려갔다. 심판위원장이 같은 경상도 출신인 정유라 선수의 라이벌 선수에게 점수를 더 주지 않았냐는 의혹이었다. 판정 시비라면 협회가 먼저 나설 문제지만 경찰은 “첩보에 의한 내사”라고만 할 뿐이었다. 다음달 대한승마협회는 이른바 ‘살생부’ 파문을 맞았고 정 선수는 다음해 국가대표가 되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 교육부 장관에게 말해 다 교체해버리겠어.”

최순실씨가 2013년 딸이 다니던 청담고 교사들에게 했다는 이 말은 지금 돌아보면, 정녕 뻥도 허세도 아니었다. 그해 실시한 승마협회 비리감사에서 ‘최씨 쪽도 문제’라고 보고한 두 공무원은 산하기관으로 밀려났다. 승마협회와 마사회의 공문으로 140일을 ‘공결’ 처리 받은 정씨는 고3 때 50일만 출석하고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최씨의 ‘국정농단’이 불러온 분노가 깊다. 이에 못지않게 특혜와 편법 정도가 아니라 대학의 학사규정과 공무원까지 갈아치운 최씨의 딸 교육이 개개인에게 안겨준 자괴감과 모욕감은 크다. “돈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원망해” 같은 그 딸의 말을 들어야 하는 나를 포함한 학부모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큰아이가 고3 때다. “학교에 잘 말씀드리면 잘 처리해주는 경우도 많던데요. 원래 예체능계는 많이 그래요.” 아이의 고집을 꺾지 못해 난생처음 보낸 실용음악학원에서 학원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실용음악 전공에 도전하는 학생들은 실기 준비에 쫓겨 거의 매일 조퇴를 하고 입시 몇 달 전부턴 결석을 한다는 것이다. 실기가 중요하지 결석일수는 별문제가 아니라고도 했다.

학교에선 조퇴 3회가 결석 1회라고 했다. 결석이 3분의 1을 넘으면 학년유예가 돼 졸업이 안 된다고도 했다. ‘잘 말씀드리는’ 방법도 모르고 ‘새가슴’인 고지식한 부모는 결석을 최소화하려고 실기 과제 준비로 밤새우기 일쑤이던 아들을 입시 전까지 아침마다 학교로 등 떠밀었다. 그때 내가 어느 협회나 공공기관 공문을 턱턱 보내 ‘공결’처리해주는 엄마였다면, 아이는 원하던 목표를 이뤘을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우리 안에도 ‘학부모 최순실’ 같은 마음이 몇 프로씩은 있지 않냐”며 엊그제 교육불평등포럼 자리에서 ‘성찰’을 촉구했다. 역설적이지만 난 최씨 모녀가 고맙다. 부모의 지위가 자식의 장래를 결정짓는 이 사회가 어디까지 천박해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줘서. 지난 20일 이화여대 교정에 붙었던 한 학생의 대자보가 보여주듯 이 모멸감을 뛰어넘는 건 자신에 대한 당당함임을 알게 해줘서.

정씨에게 보내는 형식의 글에서 그는 “나, 어제도 밤을 꼬박 새워 과제를 했다. (…) 누군가는 네가 부모를 잘 만났다고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부럽지도 않다. 정당한 노력을 비웃는 편법과 그에 익숙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얻어진 무능. 그게 어떻게 좋고 부러운 건지 나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젠 오히려 고맙다. 네 덕분에 그동안의 내 노력들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그 노력이 모이고 쌓인 지금의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실감이 나.” 지난 토요일 청계광장에 켜진 수만개의 촛불도 같은 마음 아닐까.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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