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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1 16:23 수정 : 2017.01.01 19:01

박현
경제에디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의 상층 지배세력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재벌은 정치권력에게 돈을 주고, 정치권력은 재벌의 민원을 들어줬으며, 이 과정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한 관료들은 좋은 자리를 보장받았다.

정치권력-재벌-관료 지배연합은 한때 고도성장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지금은 부패에 찌들어 우리 사회의 진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전락했다. 이런 부패연합의 행태가 지금까지도 가능한 데는 재벌의 불투명한 소유경영체제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이 타깃으로 삼은 재벌들은 3세 승계 문제나 경영권 분쟁 등에 얽혀 있는 곳들이었다. 재벌은 대통령의 요구에 어쩔 수 없었다고 강변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일부 재벌은 민원 해결의 기회로 활용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이들의 주고받기는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국민경제적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에서 그 핵심은 재벌 중심 체제의 온존이다. 재벌 옹호 세력은 재벌들이 투자와 고용을 통해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50년대 통계 작성 이후 첫 3년 연속 2%대 저성장과 극심한 불평등이라는 현실은 이 체제의 생명력이 다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재벌 중심의 수출주도 발전 전략은 높은 성장률과 고용 증대를 통해 돈이 아래로 흐르도록 했으나, 지금은 이런 ‘트리클다운’(낙수효과)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재벌이 투자를 늘려도 상당 부분은 해외 공장을 짓는 데 사용하는 탓에 국내 고용 증대에는 큰 효과가 없다. 경기가 침체하고 일자리가 부족할수록 고통은 하위계층이 더 혹독하게 받게 돼 있다. 지난해 3분기 소득 하위 1분위 가구의 가처분소득 감소율은 무려 16%에 달했다.

새 대통령을 뽑는 새해를 맞아 다시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에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력을 분산시키고 과실이 골고루 퍼지도록 균형잡힌 경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과제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핵심은 두가지다. 첫째는 재벌의 전근대적 소유경영체제를 개선하고, 경제력 집중을 완화해 이들의 힘의 남용을 막는 것이다. 미국이 최대 경제대국임에도 역동성을 잃지 않는 데는 20세기 초중반 독과점체제와 세습경영체제를 종식시킨 게 큰 힘이 됐다. 이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신생기업이 대기업을 누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덕분에 역동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분배 강화다. 우리의 저출산과 저조한 일자리 창출도 부실한 분배정책과 깊게 연관돼 있다.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우기 어렵고, 창업을 하려 해도 패자부활전이 어려운 현실에서 청년들이 위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경제민주화는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데도 꼭 필요한 과제다. 트리클다운 전략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성장의 기반이 되도록 정책을 운용하는 ‘트리클업’(분수효과) 전략으로 대체돼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재벌개혁의 기회가 다시 왔다. 당시 재벌개혁은 막강한 재벌의 로비력에 밀려 미완으로 그치고 말았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경제민주화를 외치다가 선거가 지나면 재벌 품에 안기는 역사가 반복됐다. 이번마저 실패한다면 우리 경제의 균형잡기는 영영 기회를 잃을지 모른다. 국회가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재벌개혁법안을 대선 전 회기에서 처리하고, 논의가 더 필요한 법안들도 올해 안에 통과시켜 올해를 경제민주화의 원년으로 만들기 바란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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