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26 17:41
수정 : 2017.11.27 17:28
권혁철
사회2 에디터
나는 취재기자로 어떤 분야를 맡았을 때는 그쪽 사람들과 온종일 어울려 지냈다. 입사 초기 몇년 동안은 경찰서로 출근해 경찰들과 밥 먹고 경찰서에서 퇴근했다. 이때는 내가 경찰인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출입처가 바뀌면 해당 분야 사람들과의 인연이 끊어졌다. 기자와 취재원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라, 일이 없어지면 관계도 뜸하거나 끊어지는 게 세상 이치였다. 드물지만 출입처가 바뀐 뒤에도 가끔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인들이다. 처음부터 군인들과 관계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국방부를 출입할 때는 <한겨레>를 북한 <노동신문> 서울판쯤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있었다. 나도 오기가 생겨 이런 군인들을 무시했다.
그러다 문득 ‘상대로부터 존중을 받으려면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은 합법적 살인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권한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인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군인의 본질은 남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군인에게 군복은 수의였다. 군복을 입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기 때문이다. 내가 군인의 직분을 존중하자 군인들도 기자인 나의 직분을 존중해줬다.
‘진짜 군인’은 항상 죽음과 명예를 생각한다. 육군사관학교의 모토는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다. 화랑대는 육사를 뜻하고 동작동은 순국선열이 잠든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을 말한다.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는 몸과 마음을 바쳐 조국에 충성하고 명예롭게 죽겠다는 다짐이다.
국군 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활동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적부심사에서 풀려났다. 그의 구속을 두고 ‘뒤를 캐고 과거 들쑤시는 문화혁명 같은 숙청’이라고 비판했던 <조선일보>는 ‘김 전 장관은 구치소에서 11일을 지내다, 제정신 가진 판사를 만난 덕분에 풀려났다’고 환영했다.
나는 구치소에서 풀려나는 김 전 장관을 보면서,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가 떠올랐다. 그는 1968년 육사에 입교한 육사 28기다. 김 전 장관은 초급장교 시절 보병학교에서 교관을 했는데, 전술의 정수를 정확히 짚는 명강의로 후배들로부터 ‘미래 육군의 희망’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랬던 그가 구속돼 수갑과 포승줄에 묶인 모습이 공개되면서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정신분석이론에 ‘주둔군 이론’이 있다고 한다. 군인이 전투에서 대패하면 통상 이전에 가장 어려운 전투를 치렀던 고지로 후퇴한다. 그곳에 가장 많은 주둔군을 두고 왔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바닥을 치는 순간이 오면,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억에서 위로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김 전 장관에게 49년 전 육사 1학년 생도 시절로 돌아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당시 매일 복창했던 사관생도 신조를 되새기며, 다음 질문을 자문자답해봤으면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나는 국가안보와 정권안보 가운데 무엇을 수호하는 데 앞장섰는가?’
아래는 사관생도 신조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김 전 장관의 유무죄는 법원이 최종 판단하겠지만, 명예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미군은 명예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국군도 마찬가지다. 양심에 비춰 당당하게 행동하고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도덕적 가치가 명예다. 나는 ‘참군인’이란 대중적 인기까지 누렸던 김 전 장관이 명예를 지키기를 소망한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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