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22 18:16
수정 : 2018.08.22 19:07
김은형
문화스포츠 에디터
“사모님, 어제 보신 집 거둬들였어요. 바로 계약하셨어야 하는데….”
유일하게 나를 ‘사모님’ 대접 하는 부동산에서 지난주 전화가 왔다. 몇달 동안 잠잠하던 집값 상승 기사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1년 동안 가까스로 유지하던 ‘멘탈’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우리 세가족 몸뚱이 뉠 자리 하나 서울에 없겠는가, 라고 주문처럼 외던 ‘정신승리’가 시효를 다한 느낌이 왔다. ‘참혹하게’ 오르지는 않았다고 주변에서 추천한 동네의 부동산을 찾아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여의도 통개발 발언이 나온 직후부터 여의도·용산 등에서 꿈틀거린 집값이 1~2주 사이로 다른 동네로 옮겨붙었다는 게 부동산의 설명이었다. 매물로 나왔던 집들이 들어가거나 2천~3천 많게는 5천만원씩 호가가 올랐다고 한다.
“주민들이 담합을 해서 어제오늘 새 3천만원 또 올랐어요. 좀 싸게 거래시키려고 하면 부동산을 왕따시키고 그쪽에 집 안 내놓는다고 하니까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담합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되물으니 마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느냐고 묻는 초등 1학년을 보는 표정으로 부동산 업자가 웃는다. “담합을 어떻게 잡아내요. 내 집 내 맘대로 내놓겠다는데.” 그래서인가. 전에 관심있게 보다가 신경 끄고 살았던 한 아파트 단지의 부동산 정보에 들어가 보니 같은 평대의 수십개 매물이 단 한개만 빼고 대동단결하듯 같은 가격으로 적혀 있었다.
부동산은 심리전이라고 한다. 종종 들어가는 커뮤니티에 최근 부동산 관련 의견이 자주 올라오는데 판만 깔리면 싸움질이 난다. 집값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참고하면 되는데 “상투 잡고 호구 인증해라”거나 “평생 집 없이 살게 될 거다”라는 비아냥과 저주가 난무한다. 거처이면서 개인들에게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한 부동산이 요동치면 여기에 각자의 소망과 기대와 불안과 근심이 스며들 수밖에 없다.
몇군데 둘러본 부동산에서 추천받은 단지들의 최근 거래 상황을 보니 심리전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400~500가구의 중급 아파트 단지 전체를 통틀어 상반기 거래가 서너 집에 불과한데 한 집이 거래되면 그게 표준 가격이 되어 거기서 또 몇천만원 호가가 올라간다. 계속 오를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가격구조다. 거래절벽과 가격상승이라는 모순되는 상황이 현재 벌어지는 건 부동산이 심리전이라는 걸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왜 이처럼 극단적인 심리전이 펼쳐지는 걸까. 부동산 전문가들의 갖가지 분석을 찾아봤으나 뾰족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더 오를 거라는 전망이 강하게 있는 한편 여러 악재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미친 집값이 어떻게 될지 이제는 아예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동산 주인장의 토로가 가장 정직해 보이기도 한다. 다만 이 기형적 심리전에는 정부 정책에 대한 지독한 냉소가 깔려 있다. “정부가 부동산을 잡을 의지가 없다” 또는 “내놓을 카드 다 깐 마당에 뭘 더 하겠나”라는 의견이 쏟아진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콕 짚어 정부가 지정한 ‘투기지역’에 집을 사야 한다고 말한다.
설마 정부가 급등하는 부동산을 잡을 뜻이 없겠는가 싶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두번의 부동산 정책이 제대로 작동을 못한 건 사실로 드러났고, 그로 인해 오히려 심리전 양상이 강화되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에는 반론이 나오기 힘들다. 21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동산 폭등 지역의 상승분을 공시가격에 반영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정책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이 치열하고 비정상적인 싸움에서 누구와 싸우는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번 발표 역시 또 하나의 ‘엄포’로 남을 공산이 크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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