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04 18:02
수정 : 2018.11.05 09:38
김규원 전국 에디터
2012년 들어선 정부세종청사 본관은 처음부터 논란거리였다. 구불구불한 ㄷ자 모양으로 생긴 이 건물은 15개 청사가 14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다. 건물의 길이는 3.6㎞에 이르지만, 최고 높이는 34m, 최고 층수도 8층에 불과하다. 그래서 주변의 산세와 풍경을 압도하지 않는다. 이 건물의 또다른 특징은 ㄷ자 모양으로 생긴 건물의 한가운데 7만여평을 비워놨다는 점이다. 이 널찍한 빈터는 정부세종청사의 미래이며 잠재력이다.
지난 10월31일 행정안전부(행안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정도시청)은 바로 이 빈터에 지을 새 청사의 디자인을 공개했다. 새 청사는 3만7천㎡(1만1천평) 터에 전체 바닥면적 13만4천㎡(4만600평) 규모로, 3714억원을 들여 2021년까지 지어진다. 내년에 세종시로 이사하는 행안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현재 민간 건물에 들어가 있는 인사혁신처가 입주 후보 기관이다. 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도 후보로 거론된다.
새 청사의 설계안 당선작 ‘세종 시티 코어’(희림건축사사무소)는 발표되자마자 풍파를 일으켰다. 기존 정부세종청사의 저층형, 곡선형 디자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 한가운데에 고층형(14층), 직선형으로 떡하니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의 없고, 틀에 박힌 설계안이 1등으로 결정되자, 김인철 심사위원장은 “행안부의 의도에 따라 1등과 2등이 최종 투표에서 뒤집혔다”고 폭로한 뒤 위원장직을 내던졌다. 사실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2등안이 기존 청사의 디자인을 존중했고, 그래서 기존 청사와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행안부와 행정도시청은 지난 1일 참고자료를 내어 “심사위원 선정과 심사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했다. 당선작 선정에 불공정한 사항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사실은 두 기관이 심사위원단을 결정했을 때 이미 모든 것이 끝났을 것이다. ‘눈치 없는’ 김인철 위원장이 ‘사고’를 친 것뿐이다. 두 기관은 비판이 잦아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1등 설계안의 건설을 ‘힘차게’ 추진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공무원들이 그 터에, 그런 건물을 짓지 않기를 바란다. 그 터에 아무 건물도 짓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 터는 정부세종청사의 ‘심장’과 같은 곳이어서 행안부나 과기정통부가 들어갈 자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총리실이나 기재부라도 마찬가지다. 현재 세종시에 제2 국회나 제2 청와대를 옮기려는 논의가 있으니, 그에 따라 그 터의 쓰임새를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터에 행안부가 아니라, 제2 국회나 제2 청와대가 들어가길 바란다. 이 터에 국회와 청와대가 들어선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관들이 걸어서 5~10분 만에 서로 만날 수 있다. 그들이 그 거리에서 정치와 역사를 토론하고, 근처 술집에서 술도 한잔 함께 기울인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이 터는 총리 집무실과 내각, 의회가 함께 들어선 영국의 ‘화이트홀’ 거리보다 더 멋진 어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터가 7만평 정도로 너무 좁아서 현재 10만평인 국회, 7만평인 청와대가 들어서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의회 민주주의를 만든 영국 의회의 터는 1만3천평, 대통령제를 만든 미국의 백악관 터는 2만2천평에 불과하다. 국회와 청와대의 터 넓이는 민주주의의 크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행안부 공무원들이여, 제발 부탁이다. 외람되고 무례하게 그 좋은 터를 차지해 역사에 죄를 짓지 마라. 정부세종청사 안팎에 행안부 위상에 걸맞은 터가 많으니, 부디 그런 곳으로 가길 바란다.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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