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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이 1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서 열린 ‘나눔학교’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의 손을 본떠 만든 석고 작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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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 버려지는 아기들] ④ 미혼모 양육 지원 어떻게
최소 1주일이상 이용 가능한익명성 보장되는 쉼터 마련
충분한 상담·양육지원 해줘야 20대 미혼모인 안수민(가명)씨는 지난 9월 아이를 버렸다. 아이를 낳고 한달 동안 홀로 키우다 결국 포기했다. 부모 등 주위에 출산 사실을 알리지 못해 도움을 청할 수 없었고,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를 맡아주는 보육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아이에게 우유를 잔뜩 먹이고 아이를 하루 종일 방치한 뒤 퇴근한 뒤에야 아이를 다시 돌보는 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달이 지난 뒤 그는 “아이에게 더는 못할 짓을 할 수 없다”며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아이를 버리는 대다수는 안씨와 같은 미혼모들이다. 전국 유기아동의 30% 이상이 몰리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 아이와 함께 남겨진 쪽지 등을 보면 대부분의 사연이 그렇다. 아동보호시설이나 위탁가정에 맡겨진 아이들도 3분의 1가량은 미혼모의 아이들이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베이비박스’를 없앨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안으로 거론되는 까닭이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미혼모들은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 자체를 가장 두려워한다. 사회적 편견 탓이다. 편견은 손가락질당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생계 위협으로 다가온다. 8살 아들을 키우는 최형숙(45) 민들레회 사무국장은 방송을 통해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생계를 꾸려가던 미용실 문을 닫았다. 아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싸워 눈자위에 멍이 들어 온 날도 있었다. “미혼모 가정에 대한 차별은 여전해요. 취업할 때도 아이와 엄마의 성씨가 같으면 꼬치꼬치 캐묻죠. 불이익 당할까봐 ‘아이 아빠가 죽었다’고 거짓말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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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함아연(30)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애란원에서 백일 된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다.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죄는 아니지 않냐”고 되물은 함씨는 가족과 주위에 미혼모임을 밝히고 출산했고 애란원에서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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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시간 쓰기 어려워 “지자체에 맡긴 유기아동시설
국가에서 맡아야” 목소리
독일은 집·보육시설 이용권 지원 하루아침에 편견이 사라질 순 없어도 정부 지원이 늘어나 육아를 포기하는 미혼모가 줄어든다면 점차 미혼모들이 양지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은 생각하고 있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차별에 대한 두려움과 지원 미비, 정보 부족은 미혼모들이 출생신고를 꺼리게 하는 이유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차별과 경제적 문제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충분하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출산 초기 단계에서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들을 아동 유기가 아닌 양육으로 유도하기 위해 최소한 법적 입양숙려 기간인 1주일간 이용할 수 있는 ‘익명의 일시 보육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영희 충북대 교수(아동복지학)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살 수 있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쉼터가 필요하다. 그 공간에서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숙려도 하고 충분한 상담도 해야 한다. 공적 기관이 나서면 양육을 포기하더라도 이후 부모의 기록을 남겨둘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입양특례법상 의무인 출생신고를 꺼려 아이를 버리게 되는 문제는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 해결하자는 대안이 주목받는다. 가족관계증명서 사용을 본인의 신청 외에는 엄격히 금지하는 쪽으로 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현행 가족관계등록제도에는 혼외 자녀나 전혼(이전 결혼) 자녀의 기록을 빼고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일부’ 증명 제도가 있으나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혼외 자녀나 전혼 자녀의 기록까지 모두 포함돼 나오는 ‘전부’ 증명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데, 전부 증명서는 본인 이외에도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존비속이 위임장 없이도 발급받을 수 있어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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