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아 소설 <4화>
“감동도 없는 소설보다야 그게 백번 낫지. 그리고 수기면 또 어때? 소설에 형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난 또 뭐 대단한 문제가 있다고. 그런 자네는 수기를 소설입네 하고 내놓은 적 없나?”
자전적인 소설을 거의 쓰지 않는 그였지만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런 경험이 있는 터라 나는 별 의미 없이 툭 던졌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으므로 그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쐐기를 박고 싶은 심사도 한몫했다. 그때였다. 꾹 다문 그의 입이 파르르 떨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나는 놀란 기색을 애써 감추고 그의 입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경련이 이는 그의 입은 마치 벌레 같았다. 어렸을 적 누이와 하던 짓궂은 장난이 떠올랐다. 비 오고 나면 마당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지렁이가 바글댔다. 장난이 심했던 누이는 소금 독에서 어머니 몰래 소금을 한 바가지 퍼가지고 와선 지렁이 위에 휘휘 뿌렸다. 소금을 뒤집어쓴 지렁이는 바득거리다 잠잠해졌다. 파르르 경련이 이는 그의 입이 꼭 그 모양이었다. 굵은 소금을 뒤집어쓴 오래된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고 얼굴은 점점 경직되더니 마침내 이마에 식은땀까지 솟았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서둘러 화제를 바꾸는 바람에 그 일은 그쯤에서 끝이 났다. 그의 작품이 수상작과 경합을 벌이다가 탈락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날 그는 몹시 비분강개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더 격한 자리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나는 그날 그의 다른 모습을 보았고 그에게 적잖이 실망했다. 물론 그도 나의 태도에 비위가 상했을 터였다. 그날 그의 재킷 안쪽 호주머니에 만년필이 꽂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올해 윤기가 그 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수상작은 지난해 발표한 단편으로 십 년 전에 있었던 대구지하철참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발표되었을 당시에도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문학계에선 그때 이미 수상을 점쳤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극찬을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수상을 거부했다. 이유는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자신이 받기에 너무 과한 상이라고 했다. 권위 있는 상에 오점을 남겨 죄송하다는 말만 남겨둔 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메라는 당당하게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대가의 뒷모습을 오래 잡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견작가는 또 다른 영웅으로 비쳤다. 삽시간에 인터넷 인기 검색어에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작품은 중병이 있는 한 남자가 사고 지하철을 탔다가 변을 당하는 내용이었다. 남자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고 매달리는 한 여학생을 만나 갈등 속에 그 여학생을 뿌리치고 나오다가 다시 불길 속으로 되돌아가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미묘하게 얽혀 있는 두 사람의 심리를 탁월하게 파헤쳤다는 평을 들었다. 그의 수상 거절을 두고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그때 가족을 잃었는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무언의 항의라고도 했고, 지인을 잃었는데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는 뜻에서 수상을 거부했다고도 했다. 심지어는 소설 속의 남자가 바로 그였다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날 그는 서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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