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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6 09:46 수정 : 2013.12.09 10:17

조영아 소설 <5화>



빈소에는 일찌감치 도착한 화환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상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연과 장성한 두 아들이 문상객을 맞았다. 그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우리와 함께 몰려다녔다. 같은 학교 식품영양학과에 다니던 다연은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을 싸들고 와 우리의 음식에 대한 식견과 편견을 넓혀주고 깨주는 데 열성이었다. 둘은 항상 붙어 다녔고 우린 그런 둘을 떼어놓기 위해 짓궂은 장난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연은 화를 내는 대신 겨자를 잔뜩 넣은 만두로 우리에게 복수를 하곤 했다. 오랜만에 본 다연은 퉁퉁 불은 수제비 같았다. 정수리에 흰머리가 무더기로 보였다. 다연은 나를 보자마자 눈물 바람을 하며 주저앉았다. 두 아들이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국화꽃에 둘러싸인 영정 속의 윤기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이를 내려다봤다. 바로 나오기가 뭐해 다연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앞에 놓인 음료수를 만지작거렸다. 절친한 친구가 암을 앓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미안하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해 자초지종을 묻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상심이 많겠어.”

오랜만에 본 다연에게 존대를 해야 하나 어쩌나, 어렵게 입을 뗐다. 맞은편에 앉아 눈물을 찍어대던 다연이 입을 열었다.

“준석 씨는 혹시 알고 있었어?”

“뭘?”

“암인 거.”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나도 몰랐으니. 혼자서 이미 병원에 다녀왔더군. 아주 손쓸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어. 그런데 치료를 거부했어.”

다연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느라 어깨를 들먹거렸다.

“몹쓸 사람 같으니라고. 에잇 나쁜 친구. 다연 씨 저런 나쁜 놈은 빨리 잊어버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있나.”

다행이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면죄받는 기분이었다. 흥분한 내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커졌다.

“정 떼려고 그랬는지 얼마나 냉랭하게 대했는지 몰라. 그래도 그렇지.”

다연은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한숨만 내쉬었다. 윤기에 대한 연민이나 슬픔보다는 다연까지 속이고 서둘러 떠난 그가 매정하게 느껴졌다. 분노마저 들었다. 더 앉아 있다가는 무슨 실수를 할까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울먹이던 다연이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팽 하고 코를 눌러 풀고 나서 나를 건너다봤다. 퉁퉁 부은 눈가가 붉었다.

“혹시 짚이는 거 없어?”

“뭐가?”

다연이 잠시 침묵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이를 죽음으로 몬 거.”

나는 그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암이라고 명백한 사인이 있는데, 이 무슨 말인가.

“그이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어. 암이 원인이 아니야.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병이 들기 전에 이미 죽어가고 있었거든.”

다연의 목소리는 방금까지 울먹이던 것과는 다르게 야무지고 옹골찼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그런 낌새 못 챘어?”

“글쎄. 모르겠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준석 씨는 알 거 같았는데.”

다연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다소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무심히 다연을 건너다봤다. 그때 누군가가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왔고, 기척을 느끼고 힐끗 올려다본 다연이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이 끌어안고 통곡하는 사이 나는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운전을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윤기를 죽음으로 몰아간 게 암이 아니라니.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힘주어 말하던 다연의 생생한 눈빛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게 잔뜩 기대를 걸고, 벼르던 이야기를 어렵게 꺼낸 다연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는 자책 아닌 자책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그녀의 말에 동조하다 끝내는 기정사실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원인을 밝히는 게 윤기가 내게 마지막으로 주고 간 숙제라도 되는 듯 거기에 골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 가는 데가 없었다. 꼬투리조차 찾지 못했다. 숙제를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빚처럼 쌓여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날 다연에게 만년필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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