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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10 10:08 수정 : 2013.12.11 10:02

조영아 소설 <7화>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그는 분명히 그날 늦은 저녁 무교동 낙지 골목에서 나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점심도 부실하게 먹은 나는 공깃밥을 시켜 시뻘건 낙지볶음에 비벼 입 한가득 밀어 넣었다. 그는 밥 생각이 없다며 술잔을 비우는 간간이 계란탕을 떠먹는 시늉만 할 뿐 낙지볶음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내가 떠드는 소리에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본래가 말이 많은 친구가 아니어서 우리 둘의 술자리는 언제고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취기가 더 오르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다가 종내는 아무 곳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날 그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술잔을 비웠다. 술이 아니라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끔한 차림이었는데도 씨름판에서 한바탕 뒹굴고 온 사람처럼 몹시 피곤해 보였다. 우리는 일찍 술판을 접고 일어났다.

“무교동에서 술 먹었는데?”

“미쳤군! 그러니까 암에 걸렸지.”

다연이 기가 차다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다연은 친정에 제사가 있어 이튿날에야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그 친구가 정말 거기에 있었어?”

다연의 말에 의하면 그는 그날 대구의 한 대학에서 특강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새벽같이 케이티엑스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중앙로 다음 역인 반월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예정이었다. 열차가 중앙로역에 들어섰다. 승강장이 연기로 뿌옜다. 정차한 열차에 탄내와 함께 연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열차가 곧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별 동요 없이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탄내는 점점 더 심해졌고 연기는 자욱하게 객차를 채웠다. 이상을 감지한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 인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망치 비슷한 연장을 꺼내 창문을 깼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빠져나갈 구멍이 생겼다. 구멍으로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쳤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천천히. 천천히. 어린애와 여자부터. 창문을 깬 인부가 소리치며 사람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빠져나갔다. 그도 인부의 도움으로 그곳을 탈출했다. 열차는 이미 화마에 휩싸여 있었고 검은 연기가 승강장을 꽉 메웠다. 다행히 그는 별 탈 없이 역을 빠져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 타고 인근 병원에서 간단한 응급조치를 받은 후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고 나를 만난 거야? 진짜 미친놈이군!”

“뉴스 보고 전화 했더니 사우나에 있더라고. 탄내가 많이 뱄나 봐. 옷까지 새로 싹 사 입었더라고. 그러고 왔으니 난 정말 괜찮은 줄 알았지. 이 얘기도 한참 있다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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