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아 소설 <8화>
나는 오랫동안 맞추지 못한 퍼즐 조각을 제자리에 쏙 밀어 넣는 기분이었다. 평소 그답지 않게 지나치게 말쑥했던 그날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침을 자주 해 감기에 걸렸느냐고 물었던 것도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맞추지 못한 퍼즐 조각이 남았다. 그날 약속은 아주 사소한 거였다. 엄청난 일을 당한 그가 굳이 그렇게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 그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대구까지 갔다가 만나러 나올 정도로 깍듯한 예를 필요로 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그날 내게 단 한 마디도 내색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유난히 빠르게 비우던 술잔이며 묻는 말에 멍하게 대응하던 눈빛과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자주 두리번거리던 일,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과 수상 거절까지. 무엇이 나를 흥분되게 하는지도 모른 채 나는 절대적인 어떤 기대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것은 수상한 설렘이었다.
“그 일 이후 사람이 달라졌어. 말수가 부쩍 줄고 잘 웃지도 않고 사람을 피하고. 심지어는 저녁 식사도 혼자 할 때가 종종 있었어. 그때 받은 충격이 커서 그런가 보다 했지. 그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어. 윤기 씨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거야.”
“그럴만한 이유가 없을 텐데?”
“그걸 알고 싶어서.”
다연은 잠시 침묵했다.
“배신감 때문이야. 평생을 허수아비하고 살아온 것 같아. 마치 나 몰래 차린 딴살림을, 그 사람이 죽고 나서야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는 기분이거든.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그걸 부정하는 길밖에 없잖아.”
나는 그녀가 좀 더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물증을 내놓기를 기대했다.
“그 사람 확실히 변했어.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이불 속에서 어쩌다가 내 살이 닿을라치면 기겁을 하고 몸을 사렸어. 얼마나 끔찍하고 수치스러웠냐 하면…… 마치 더러운 똥물이라도 튄 것처럼……. 그이 몸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일시에 긴장해서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다 일어서는 것 같았어. 꼭 공벌레 같았어. 왜 있잖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공처럼 오그라드는 벌레 말이야. 거대한 공벌레하고 사는 거 같았거든. 그래도 거기까진 견딜 만했어. 그 공벌레가 점점 고슴도치로 변하는 거야. 몸 여기저기서 여린 가시가 하나 둘 돋더니 이내 바늘처럼 단단하게 여물었어. 음…… 난 고슴도치가 되기로 했지. 그 가시 속으로 섞여 들려면 나도 가시가 되는 수밖에 없잖아. 후후. 그런데 다 부질없는 짓이었어. 그 사람의 가시는 어찌나 촘촘하고 첨예한지 내 가시가 섞여 들 수도, 닿을 수도 없더라고. 아마 우리가 살아온 날이 그보다 더 촘촘하고 첨예하진 않았을 거야.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분하기도 해 따지고 악을 썼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고. 그런데 뭐랬는지 알아? 그냥 자기를 좀 내버려두면 안 되겠냐며 되레 사정을 하는 거야. 기가 막혀서. 더는 화를 못 내겠더라고. 자연히 나도 입을 다물게 되고. 그렇게 점점 멀어지다가 결국 각방을 쓰게 됐어.”
긴 말끝에 다연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한숨을 몰아쉬었다. 위스키를 벌써 석 잔째 비우고 있었다. 나는 뜻하지 않은 다연의 고백에 당황은커녕 재미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하던 말을 어서 이어주기를 은근히 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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