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소설 <3화>
그녀는 손을 뒤집어서 손등을 바라보았고 그다음엔 손가락을 벌려 손등의 경계를 골똘히 살펴보았다. 손등은 거무스름한 황색을 띠고 있었는데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는 여태도 엷은 분홍이었다. 갓 태어났을 때는 전부 그랬을 것이다. 손등도 손바닥도 발바닥도 뒤꿈치도…… 갓 태어났을 때엔 그처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을 것이다. 갓난아기의 발바닥이 손바닥과 같은 것처럼. 그녀에게는 갓난아기의 도톰한 발을 쥐고 엄지로 발바닥을 문지르며 감탄한 기억이 있었다. 굳은살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말랑한 살에 관한 기억이었다. 직립과 보행을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인간의 발. 누구나 이런 발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일단 일어서서 걸음을 배우게 되면 달라지지. 완전히 다른 조직인 것처럼 발바닥도 뒤꿈치도 딱딱해져…… 그게 너무 서글프다고 생각하며 그 작은 발을 한참 만진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누구의 발이었나. 누구의 아기였나. 여동생의 아이였을 것이다. 그녀의 여동생은 멀리 떨어진 소도시에 살았고 남매를 낳아 길렀다. 바닷가에 그 집이 있었지, 하고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여름엔 능소화가 늘어지고 가을엔 백일홍이 끝없이 바래가며 상승하던 마당. 줄에 묶이지 않은 개들이 순한 표정으로 마당을 돌아다녔고 애들이 그 개들의 커다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엎드려 있거나 누워 있으면 등이나 배로 꾸물꾸물 기어올랐던 아이들. 땀투성이의 뜨거운 정수리를 내 옆구리에 비벼대던…… 그 애들은 모두 어른이 되었겠지. 그들의 소식을 들은 지도 한참 되었다. 한참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싱크대 수챗구멍 근처에 놓인 비닐을 끌어당겼고 그 바람에 비닐 바깥으로 비어져 나온 불그스름한 꼬리지느러미를 보고 놀랐다.
그녀는 흐르는 물에 전어를 씻어 바구니에 엎어두고 식초를 사용해 싱크대를 닦은 뒤 찻주전자에 차를 만들었다. 부엌 탁자엔 찻잎 깡통과 일부러 공기에 내놓아 무르게 만드는 중인 과자를 담은 봉지, 옷핀이나 단추를 모아둔 접시, 다른 데로 치우려고 쌓아둔 그릇이 놓여 있었고 그녀는 그 물건들 곁에, 탁자 끄트머리에 찻잔을 두고 만족스럽게 차를 마셨다. 따뜻한 차를 삼키자 졸음이 쏟아졌다. 그녀는 꾸벅꾸벅 졸다가 싱크대에 놓인 컵을 보고 소스라쳐 등을 폈다. 실리의 펜촉이 담긴 유리컵이었다.
나 좀 봐……
오늘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그녀는 무더기로 쌓인 책들 앞을 지나 책상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짙은 색을 먹인 고무나무로 만든 책상이 벽에 바짝 붙어 있었다. 상당히 낡았지만 실은 별로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책상을 집에 들이고 얼마 되지 않아 책상의 주인이 세상을 떴으므로. 책상은 수만 권의 책으로 곧 무너져 내릴 듯한 책장을 등진 채 놓여 있었다. 사용되는 일도 없이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었고 어쩌면 그 때문에 더 낡았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잘 사용하지 않는 전축이 더 빠르게 녹스는 것처럼. 그녀는 의자를 당겨 앉은 뒤 책상 모서리를 잡아보았다. 노트와 새 잉크병이 이미 책상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등을 구부린 채 책상 너머 벽을 바라보았다. 불규칙하게 들뜬 벽지에 얼룩이 번져 있었다. 어느 해 어느 계절, 아마도 여름에 내린 비의 흔적일 것이다. 이렇게 안쪽까지 스밀 정도로 많은 비…… 그녀는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여기보다는 창가가, 뭔가를 쓰다가 고개를 들면 밖을 볼 수 있는 창가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디, 하고 그녀는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의자는 책상과 마찬가지로 고무나무로 만들어졌고 제법 무거워서 이것을 뒤로 밀어내는데도 꽤 힘을 들여야 했는데 그보다 몇 배는 무거운 책상을 혼자 옮길 수 있을지 어떨지, 그녀는 의심조차 해보지 않고 일단 측면에서, 당기기 시작했다.
한두 번 삐걱거리는 소리만 났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오래…… 이 자리에 놓아두어서 그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당기다가 그다음엔 밀었다. 팔과 가슴과 허리와 두 발과 무릎에 잔뜩 힘을 주어서 밀고 밀고 밀다 보니 어느 순간 그…… 하며 책상이 밀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게 기뻐서 더 힘껏 밀었다. 그그그그…… 그그그…… 그녀는 책상으로 바닥을 긁으며 나아갔고 마침내 적당한 자리에 당도했을 때 얼굴을 붉히며 허리를 폈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고 가슴이 뻐근했지만 탁한 유리를 통해 바깥이 보이는 자리였다. 봐, 하고 그녀는 부옇게 일어난 먼지 속에서 말했다. 이제 훨씬 좋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잉크에 펜을 담갔다. 정성껏 잉크를 빨아들이자 쉭, 소리가 났고 그녀는 긴장해서 만년필을 꾹 쥐었다. 오늘 안에……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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