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소설 <5화>
한번은, 하고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실리를 데리고 여동생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밤배를 타고 갔다. 섬으로 시집간 여동생의 집엔 대문이 없었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바다가 있었다. 아침이 되어 꽤 멀리까지 물이 빠져나간 바닷가는 단단하고 축축한 모래로 덮여 있었다. 바다 건너 또 다른 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한나절을 놀았다. 모래는 유백색이었고 바다는 먼 데까지 에메랄드 색이었다. 잘 웃었고 잘 놀았다. 그런 소리…… 그런 색에 관한 기억이 그녀에게 남아 있었다. 바다의 경사가 완만했으므로 그녀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실리를 튜브에 실어 파도에 맡겨두었다.
그녀가 무릎에 모래를 묻힌 채로 바닷가에 앉아 있는 동안 실리는 튜브에 실려 둥실둥실 떠다녔다. 샌들과 카메라, 몸을 닦으려고 챙겨갔지만 모래가 잔뜩 달라붙어 무용지물이 되고 만 수건…… 걸어서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섬이 있었고 그쪽 해안에도 집이 있었다. 빨갛고 파란 지붕이 보였다. 옥상에 널어둔 빨래까지 다 보였다. 명실아, 실리가 그녀를 불렀다. 수면 아래 해초 군락지가 있었다. 그 부근의 바다가 검었다. 거대한 반경을 가진 구멍처럼 보였는데 그쪽으로 떠내려가며 실리는 두 팔로 바다를 젓고 있었다. 그 얼굴. 그 젊고 앳된 얼굴. 그런데 그 얼굴이 어땠는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잘 기억할 수 없었다. 아주 멀리 떨어진 광경을 보는 것처럼 지나치게 멀었다. 실리는 그 바닷가에서 아주 작았고 튜브에 얹힌 채로 둥실둥실, 그런데 그 얼굴을 떠올리려고 할수록 풍경의 가장자리부터 어두워졌다. 너무 어둡고 너무 느려서…… 이상하기도 해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떤 기억은 맛이 느껴질 정도로 선명한데 어떤 것은 눈앞에 질긴 막을 씌운 것처럼 불투명했다. 어느 해인가의 여름…… 그런데 그게 어느 해였지? 실리와 내가…… 몇 살 때였지?
여동생이 알 것이다. 그녀는 의자를 밀고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 자석으로 고정해둔 메모지가 있었고 그녀는 그 낡은 종이를 들여다보며 가장 익숙한 번호를 찾아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쥐고, 어둡고 긴 터널을 통해 듣는 것처럼 막막하게 들려오는 발신음을 들었다. 여보세요, 하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말했다.
영실이냐.
네?
영실이.
이모…… 이모예요?
영실이랑 통화를 좀 하고 싶은데.
……
여보세요?
이모, 엄마 전화받을 수 없는 거 아시잖아요.
거기가 영실이네 집 아니에요?
이모?
이모라니…… 그녀는 두렵고 당황스러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영실이를 찾는데 왜 자꾸 나더러 이모라고 하나. 나를 이모라고 부르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 라인이 이상한 곳으로 연결된 게 틀림없다. 누군가 그렇게 되도록 해코지를 해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싱크대에 배를 대고 한동안 서 있다가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민방위 날짜가 아닌데도 높고 다급하게. 그녀는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공습경보라고 여겼고 드디어, 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동안 점점 소리가 다가왔고 그녀는 그게 양파와 마늘을 팔아보려는 확성기 외침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득하게 생각이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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