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 소설 <4화>
만송의 구령에 맞추어 사병들이 일제히 목검을 내려놓는다. 제법 소슬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 산중이나, 사병들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만송이 실실거리며 견이 서 있는 바위 밑으로 온다. 그는 전처의 막내아우로 혼인날부터 견을 따르더니 지금껏 견을 친형처럼 붙좇는다.
“형님. 사내가 밥과 술만 먹고 어찌 사오?”
괜스레 실실거린 연유가 이것이렷다.
“허허. 그야 아랫도리도 먹여야 하네만, 험하기로 소문난 멸악산 첩첩산중에서 계집을 구할 방도가 있을까 본가?”
만송이 왼손으로 가재수염을 배배 꼬며 너털거린다.
“눈치만 빠르면 절에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답니다.”
“준치젓도 물리는데, 새우젓 따위야?”
“형님도 참,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오, 어떻게?”
“허허,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 뜸을 들이나?”
“저 봉우리를 넘으면 작은 절 한 채가 있다오.”
“그런데?”
“그런데라니? 총명하고 인물 좋으신 우리 형님이 눈치는 어째 곰 발바닥이시오?”
“아, 이 사람아. 말을 해야 알지. 뜸 그만 들이고 어서 말을 하게.”
“거기는 암중들만 오글오글 모여 있다 하지 않소?”
견이 목검을 다른 손에 옮겨 잡는다.
“암중이라면 비구니?”
견의 눈동자에서 운무가 싹 걷힌다. 아연 활기를 띤 눈동자는 쌀가마니를 발견한 생쥐의 그것처럼 반들거린다.
“아, 기생년, 백정년, 무당년, 종년, 물리도록 먹어보았지만 암중 맛은 못 보았지 않소? 이런 산속에서 풀만 먹으면서 불도를 닦는 계집이라니 그 맛이 특별할 듯하오.”
“고기 물린 입에는 나물 반찬이 산뜻하지. 그네들 입장에선 사내의 가운뎃다리 고기 맛이 그리울 게야. 달리 생각하면 그네들이 장땡을 잡은 셈일세. 사내치고는 우리보다 나은 인물이 어디 흔한가? 이왕 당하는 거, 쭈글쭈글 냄새나는 늙정이들보다는 우리처럼 훤한 젊은이들한테 당하는 게 낫고말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계집이 불도를 닦아 무엇에 쓴단 말이냐? 제가 아무리 중입네 해도 계집은 계집이 아닌가.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계집의 도는 사내를 섬기는 것이라 지어놓았거늘.”
“눈치는 곰 발바닥이신 분이 말은 기름 바른 찰떡같이 번드르르하구려.”
“나야 괜치 않으나 다들 몸을 많이 놀려 배가 고플 텐데, 밥은 먹고 가야지?”
“사내들이 대충 끓인 밥은 이제 지겹소. 오늘부터 저녁밥은 대어놓고 저 절에서 먹읍시다. 꿩 먹고 알 먹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좋지 않소?”
“그러세. 쌀 몇 섬 시주하면 그네들도 좋아할 거네. 하는 김에 돼지도 몇 마리 시주할까?”
견과 만송을 둘러싼 무리가 킬킬거리며 한 마디씩 거든다.
“돼지는 질렸소이다. 사슴이나 노루는 어떻소이까?”
“네발 달린 짐승만 가하리까? 닭이나 꿩도 좋을 것 같소마는?”
“물짐승은 안 하고?”
“아, 고기는 그만하오. 사내 고기가 떼거리로 가거늘 무슨 놈의 고기 타령이 그리 기오?”
갈바람이 소슬하다.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든 사내들이 접어 올렸던 소매들을 풀어 내린다. 멸악산 나무들이 제 긴 그림자와 함께 흔들린다.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하여 나뭇잎들이 누르락푸르락하다. 새떼가 날자, 마른 잎들이 우수수 우수수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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