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 소설 <7화>
기미년(숙종 5년, 1679), 한양 사직동, 허적의 집 별당
“개 같은 년, 네년이 감히 누구에게 훈계를 하느냐?”
견이 예형의 뺨을 쥐어박는다. 꽈리 네 개를 붙여놓은 듯한 예형의 입술 한쪽이 실그러지며 핏방울이 튄다. 예형이 소맷자락으로 입술을 훔치며 견을 쏘아본다.
개 같은 년? 다행이네. 홍순민 절도사께서는 나를 개 취급도 안 해줬거든. 개는 사냥터마다 데리고 다니고 고깃점 붙은 뼈다귀도 던져주고 털도 쓸어주면서, 당신 딸인 나는 알은체도 하지 않았지.
“뭘 노려봐? 눈깔을 확 뽑아버릴까 보다.”
예형이 한 걸음 다가서자, 견이 주먹을 흔들며 제풀에 한 걸음 물러선다.
겁나느냐? 마누라 겁내는 놈이 집구석에 남의 유부녀는 왜 끌어들였느냐? 소가 웃을 노릇이로고. 네 야비한 낯바닥에 내 피 섞인 침을 열두 번 뱉어주어도 모자랄 터이나 이차옥이 불쌍해서 일단 참는다.
“성내지 마시고 제 말씀을 들어보세요. 시방 차옥이 이 집에 있는 줄 아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친정에서는 시집에 가 있는 줄 알 테고 시집에선 친정에 있는 줄 알 테니, 아직은 사달을 막을 시간이 있습니다. 때를 놓치지 마시고 두 집에 사람을 보내 통기하세요. 차옥이 문수사에서 발복(發福) 기도를 올리고 있으니 조금도 염려 말라고요. 그럼 제가 차옥과 함께 문수사에 가서 며칠 정양을 시키며 마음을 안정시킨 연후에 시가에 데려다 주겠다지 않습니까?”
견이 콧방귀를 뀐다. 예형의 말이 솔깃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고양이 쥐 생각을 한다고 해라. 네년이 언제부터 서방 생각을 그리했다더냐? 필시 네년이 차옥을 빼돌렸다가 내 뒤통수를 치려는 수작이 아니냐?”
고양이? 뒤통수?
예형의 열 손가락이 고양이처럼 잽싸게 견의 얼굴을 긁어내린다.
“에라이 육시랄 놈아. 이 홍예형이 네놈 같은 줄 아느냐?”
견이 막느라고 막았지만, 흰 얼굴에 붉은 생채기가 대여섯 줄은 났다. 살이 찢어져 피가 배어 나오는 곳도 있다.
“던지런 놈, 오입질을 하더라도 곱게 하거라. 기생년, 종년, 두름으로 해 처먹고 쾌로 해 처먹더니 하다 하다 이제는 남의 유부녀를 집구석에까지 납치해 데려오느냐?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예형이 사설을 늘어놓는 틈을 타, 견이 오른손으로 예형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꺼두른다.
“하늘?”
예형의 머리채에서 비녀가 떨어져 날아간다. 견이 왼손으로 예형의 정수리며 어깨며 귀뺨이며 꽈리 입술을 마구 때린다.
“내가 네 하늘이다, 이년아. 계집붙이한테는 서방이 하늘인 줄을 몰랐더냐? 네년이야말로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그래, 빌어먹을 하늘 한번 치받아보마.
예형이 어깨를 낮춘다.
더, 더. 더 낮춰야 해.
열네 살 때, 호시탐탐 나를 노리던 숙부 홍양민, 그놈의 부자지를, 이렇게 몸을 낮추고 장딴지를 한껏 당겨선…….
더는 안 돼. 머리 가죽이 벗겨질 것 같아.
예형의 머리통이 솟구치며 견의 턱을 올려붙인다. 동시에 예형의 무릎이 앞으로 나간다. 둥그런 종지뼈가 견의 부자지를 타격한다.
“네놈만 역천(逆天)하고 싶은 줄 아느냐? 나도 네놈 밑에서는 못 살겠으니 역천 좀 해보련다.”
예형이 그예 견의 얼굴에 침을 뱉고야 만다.
견은, 아랫도리를 붙들고 허청허청 뒷걸음질하다가 바람벽에 부딪친다. 다릿심이 풀렸는지라, 그대로 주저앉는다.
“가, 가, 강…….”
문밖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이름 불리기만 기다리고 섰던 시노(侍奴), 강이가 지게문을 부술 듯 밀어붙이며 달려든다.
“아이고, 나리, 나리. 이게 어인 일이십니까요.”
강이의 곁부축을 받고 일어선 견이, 입안의 것을 뱉어낸다. 팥알 같은 피 찌끼. 그리고 부러진 앞니.
견이 강이를 떠밀어낸다.
“저년을 잡아야지 왜 나를 잡고 있느냐. 저년을 붙들어라. 내, 단매에 요절을 내고 말리라.”
강이에게는 홍예형이 상전이다. 더구나 여인이라 감히 손을 댈 수 없다. 강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홍예형이 열린 문으로 뛰쳐나간다. 너더댓 비복들이 물러서며 길을 내준다.
“뭣들 하느냐? 저년을 붙들어 결박하라. 내, 저년을…….”
견이, 눈을 희번덕거린다.
“내, 저년을 결단코 물고를 내리라. 몽둥이를 가져오너라. 아니, 도끼, 도끼를 다오.”
툇마루를 내려오다 비틀 쓰러지는 그를 누군가 붙들어 세운다.
“도끼 가져오라니까?”
견이, 눈을 끔벅거린다.
이게 누구야?
“이보게, 노직, 나를 몰라보겠나? 날세, 나. 자네 사촌.”
몰라보긴.
“남의 내실에 어인 행차시오니까?”
견이, 미간을 찌푸린다.
“섭섭한 말씀 마시게. 사촌이 남인가? 하하하.”
키 큰 사내가 눈치 없이 파안대소한다.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 일찌감치 사류에서 배척당한 인사답다. 유철. 허적이 소박 놓은 재취부인 여흥 민씨의 조카이니, 피 한 방울 섞이지는 않았으나, 구태여 촌수를 따지면 견과 사촌지간이기는 하다. 여하튼, 너, 잘 왔다. 마침 잘 왔다.
견이 입아귀를 실룩거리는 모양이 얼핏 웃는 듯도 하다.
“이 사람 노직. 조강지처를 죽였다가 그 뒷감당을 어이 하려 하나? 좀 모자라고 좀 패악스럽더라도 기왕 내 집안사람이 된 여인인데 너그러이 다스려야지. 안 그런가? 하하하. 하하하.”
유철이 또 웃는다. 웃으며 견의 겨드랑이를 붙든 손에 힘을 준다. 눈도장을 확실히 찍겠다는 심산으로 눈에도 힘을 준다.
“내가 자네 한번 만나려고 이 집을 얼마나 들락거렸는지 아는가? 미인을 연모하는 사내인들 나만큼 지극정성을 바치진 못할 걸세. 하하하.”
“번듯한 반갓집 자제께옵서 천하디천한 이놈을 만나려고 그리 애를 쓰셨다니 그저 감읍, 감읍할 따름이외다.”
견이 주변 비복들 들으라는 듯 또박또박 끊어 말한다.
등신, 축구(畜狗) 같은 놈. 능참봉 자리라도 하나 떨어질까 싶어 왔겠지만, 모가지 떨어질 날만 남았으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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