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 소설 <8화>
같은 해, 한양 의금부 옥
“형님, 그새 얼굴이 어찌 그리 변했소?”
예형이 목을 빼고 동복(同腹)자매 홍진웅을 살핀다.
“네 꼴은 어떻고?”
진웅이 고개를 외로 꼬며 손으로 입을 가린다.
“나야 거지반 귀신 형용이지. 근 한 달, 물 구경 못 하고 형신(刑訊) 받아보오. 양귀비인들 귀신 꼴 안 날 수가 있나. 그런데 늙은 영감마저 사별하고 만고에 심간 편한 우리 형님이 왜 그 모양이우?”
진웅이 한 손으로 보자기를 끄른다.
“에그, 조선 땅에 심간 편한 사람 다 죽었나 보다. 헛소리 말고 얼른 이거나 먹어라. 약병아리 한 마리랑 찹쌀이랑 푹 고았다.”
“말소리까지 이상한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
진웅을 뜯어보는 예형의 눈은, 움쑥 들어간 탓에 더욱 형형하다.
“에그, 내가 누굴 속이겠니?”
진웅이 입을 가린 손을 내리고 계면쩍은 표정으로 웃는다. 앞니 한 개가 빠졌고 한 개는 반 토막 났다.
“그놈 짓이구나?”
진웅이 눈길을 피하자, 예형이 이를 빠드득 간다.
“야비한 놈. 내, 그놈 자지를 아예 못 쓰도록 만들었어야 하는 건데. 그때 그만 힘이 달려서 도망쳐 나온 것이 천추의 한이로다.”
진웅을 따라온 나졸이 말마디를 거들며 옥문을 연다.
“말도 마오. 아직 쓸 만한가 봅디다. 이 판국에도 오입질하러 돌아다니는 거 보면.”
나졸이 죽 단지를 넣어준다.
“그거, 따뜻할 때 얼른 먹어라. 먹어야 견디지.”
칼을 쓴 채여서, 예형은 팔을 길게 뻗었다가 조심스레 접으며 숟가락질을 한다. 대여섯 수저를 뜬 다음에 예형이 말을 한다.
“그 미친놈이 찾거들랑 부원군댁으로라도 피신을 할 노릇이지, 무엇하러 그 미친놈을 만났소?”
“그놈이 날 찾아온 게 아니고 내가 그놈을 찾아갔다. 너 좀 살려달라고. 왜 하필 유철이냐? 친속상간으로 엮어 사람을 기어코 죽일 작정이냐? 정 살기 싫으면 내쫓아라,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으냐고 했지.”
“그랬더니?”
“수굿이 듣고 있기에 말발이 서려나 보다 했어. 결김에 명토를 박자 싶어,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고…….”
“흥, 그 말에 발광했구먼. 하늘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 하늘 말만 하면 지랄을 하게?”
진웅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허구한 날 죽기 살기로 싸운 부부라도 부부는 부부로다. 척하면 삼천리일세그려.”
나졸이 끼어들며 울근불근한다.
“원,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 모양인지. 마마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돌아가신 부원군 대감의 소실이셨으니 대비마마의 서모가 아니시오. 허견, 그 꼴같잖은 얼자가 무슨 권세를 믿고 감히 대비마마의 서모를 때린단 말이오?”
예형과 진웅이 나졸의 말에 반은 수긍하면서도 대꾸를 하지 않는다. ‘꼴같잖은 얼자’가 걸려서다. 자매는, 얼자도 못 되는 얼녀인 것이다.
“그놈이 형님 치는 걸 누가 봤소?”
“그 집서 벌어진 일이니 그 집 비복 여럿이 봤지.”
예형이 길게 한숨을 쉰다. 터졌다 아물었다 터지기를 되풀이한 꽈리 입술이 부르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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