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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02 20:45 수정 : 2014.01.03 15:12

박태균의 베트남 전쟁

“그때는 베트남 가면 죽는 줄 알았어. 전쟁 났다고 하니까. 귀국했더니 사람들이 다 신기하게 쳐다봤지. 살아 돌아올 줄 누가 알았냐고.”

지난달 23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임남규(72)씨가 50년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경기도 동두천 제3이동외과병원에서 행정병으로 일하다 1964년 9월11일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으로 파병됐다. 130명 규모의 제1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 10명으로 구성된 베트남전 한국군 첫 파병단은 비전투요원이었다. 그들이 머문 곳도 전쟁터와 거리가 멀었던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 근처 붕따우였다. 1965년 3월 2차 파병된 ‘비둘기부대’의 임무도 남부 지안에서의 건설 지원이었다.

베트남 파병부대의 안녕은 오래가지 못했다. 1965년 10월 3차 파병(청룡·맹호부대)과 1966년 4차 파병(백마부대)에는 전투부대가 포함됐다. 1973년 3월 철수 때까지 8년6개월간 32만4864명이 베트남에 갔다. 전원 귀국은 실패했다. 1965년 69명의 사망자를 시작으로 1973년까지 5099명이 베트남에서 숨졌다. 그중 4650명이 서울 현충원에 묻혀 있다. 지난해 11월25일 숨진 채명신 초대 베트남 주둔 한국군 사령관도 장군 묘역을 마다하고 사병들 곁에 묻혔다.

“동수야 내가 왔다.” 임씨와 함께 서울 현충원을 찾은 박한창(72)씨가 함께 파병 갔다 숨진 김동수씨 묘비 앞에 섰다. ‘1965년 5월16일 월남에서 전사.’ 묘비 뒷면에 적힌 짧은 글로는 그가 왜 베트남에 갔고, 가서 무얼 했는지 알 수 없다. 이곳에 있는 4650명도 마찬가지다. 왜 베트남에 갔는지, 가서 무얼 얻고 무얼 잃었는지 50년 전에 해야 했던 질문을 이제야 던진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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