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1.22 20:10 수정 : 2015.01.22 20:10

안토니오 네그리(왼쪽)와 마이클 하트. 두 사람은 <제국>(2000), <다중>(2004), <공통체>(2009)를 통해 새 개념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목적론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8부.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도래
23.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
: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급진민주주의
24.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 다중의 공산주의

25. 필립 페팃: 신공화주의적 민주주의
26. 자크 랑시에르: 몫 없는 이들의 몫
27.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위하여

오늘날 안토니오 네그리(1933~)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사상가 중 한 명이다. 더 나아가 네그리는 대안 세계화 운동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좌파 정치 운동에 영감을 주는 지도적인 이론가 중 한 사람이다. 국내에서도 네그리의 다중 정치학은 2000년대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설명하기 위한 유력한 이론적 틀로 주목받았다.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평범한 법학 교수였던 그가 이처럼 대단한 사상가 반열에 오를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1960년대 이래 이탈리아 정치에 커다란 흔적을 남긴 급진 좌파 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운동에 참여했던 여러 지식인들 중에서 네그리가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네그리의 사상적인 혁신 능력 덕분이다. 사상가로서 네그리의 탁월함은 무엇보다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그의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개념 중 하나인 ‘다중’ 개념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개념은 스피노자의 <정치론>(1677)에 나오는 물티투도(multitudo)라는 라틴어 용어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네그리 이전에는 누구도 이 용어에 주목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이것이 스피노자의 정치학 및 그의 철학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네그리는 <야생의 별종>(1981)이라는 제목의 스피노자 연구서에서 정말 대담하게도 물티투도를 스피노자 철학의 근간 개념으로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줄 수 있는 발판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야생의 별종> 이후 물티투도는 스피노자 연구의 중심 주제가 되었으며, 네그리가 마이클 하트와 공동으로 저술한 <제국>(2000)과 <다중>(2004) 이후에는 현대 좌파 정치학의 보편적인 이론적 어휘로 자리 잡았다.

네그리의 또 다른 독창적인 능력은 오늘날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치철학 3부작, 곧 <제국> <다중> <공통체>(2009)에서도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된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좌파 이론가들에게 큰 도전 과제를 제기했다.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과 다중, 그리고 공통체라는 세 가지 개념을 통해 이 문제에 대응하고자 했다.

네그리와 하트에게 제국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지구적 배치를 뜻하는 개념으로,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이것은 혼합정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곧 유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주요 8개국(G8) 등과 같은 국제기구로 이루어진 군주정의 특징과 더불어, 자원 분배와 교환의 네트워크로서 다국적 기업이 구조화하고 국민국가의 영토적인 조직이 매개하는 귀족정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아울러 대중 매체와 문화산업 및 다수의 비정부조직들(NGO)로 이루어진 민주정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혼합정체로서의 제국은 영토 논리에 종속되어 왔던 국민국가 중심의 국제질서 또는 제국주의적인 국제질서가 종식되고, 탈영토화한 제국적 주권이 성립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중은 ‘제국’의 시대 정치주체
인민·대중·계급과 달리
피지배자 포괄하는 확장적 개념
특유의 목적론적 성격은 한계

제국의 두 번째 특징은 이제 자본의 지배가 공장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사람들의 삶 자체가 자본에 포섭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이전의 자본주의에 비해 제국의 시대는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통제당하고 구속되는 시대, 따라서 저항과 변혁을 사고하기가 더 어려운 시대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이제 저항은 더 이상 주변에 머무르지 않고 자본의 중심에서 조직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시민사회는 국가 속에 흡수되지만, 이러한 흡수의 결과, 전에는 시민사회에서 조정되고 매개되던 요소들이 이제는 국가 속에서 폭발한다. 저항들은 더 이상 주변적이지 않고 네트워크 속에서 열리는 사회의 중심에서 활동한다.”(<다중>)

어떻게 사회의 실질적 포섭이 강화되는 제국의 시대에 저항이 확산되고 조직화되는 일이 가능할까? 이것은 제국의 세 번째 특징에서 기인한다. 이들에 따르면 제국 시대의 자본주의의 근본 특징은 비물질노동이 자본주의 생산의 새로운 헤게모니 형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물질적 노동이란 “서비스, 문화 상품, 지식, 또는 소통과 같은 비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제국>)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정보처리 및 소통기술과 관련된 노동과 더불어 정서의 생산과 처리를 포함하는 감정노동도 포함된다.

비물질적 노동의 중요성은 이러한 노동 형태 속에는 “협동이 노동 자체 속에 완전히 내재한다”는 점, 곧 “비물질적 노동은 직접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동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비물질노동이 헤게모니적인 노동이 되면서 이제 협동은 노동 과정 외부에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활동에 완전히 내재적인 것이 된다. “자기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서, 비물질적 노동은 일종의 자생적이고 초보적인 공산주의를 위한 잠재력을 제공하는 것 같다.”(<제국>)

이는 제국의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정치 주체인 다중이 출현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중은 인민(people)이나 대중(masse)과 구별된다. 인민이 주권에 의해 부과되는 통일성과 환원의 논리를 대표한다면, 대중은 수동성과 무질서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다중은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복수적이고 다양한 상태로 남아 있다. (…) 다중은 독특성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독특성은 그 차이가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 주체, 차이로 남아 있는 차이를 뜻한다.”(<다중>)

더 나아가 다중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곧 다중은 “자본주의적 생산 및 재생산 규범들에 의해 착취되고 그 규범들에 종속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범주”(<제국>)를 가리킨다. 이전의 노동자 계급 개념이 배제에 기초를 둔 제한된 개념인 데 반해 다중은 어떠한 배제나 우열도 전제하지 않은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개념이다. “다중은 프롤레타리아 개념에 그 가장 풍부한 규정, 즉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노동하고 생산하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규정을 부여한다.”(<다중>)

제국의 질서하에서 주권과 다중의 생명정치적 역량 사이에는 힘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어 피지배자들이 사회적 조직의 배타적 생산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에 상응하여 피지배자들은 점차 자율적이게 되고 그들 자신의 사회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다중>)고 주장한다. 제국적 질서의 생산 그 자체가 이미 자율적인 주체의 형성, 정치 주체로서 다중의 잠재력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3부작의 마지막 저작인 <공통체>에서는 자본주의의 급진적인 대안으로서 공통적인 것(the comm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공통적인 것’은 지식, 언어, 정서 등을 가리킨다. <공통체>에서 근대성은 두 가지 소유 양식이 지배했던 시기였다. 하나는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적인 국가 소유였다. 사적 소유와 국가 소유는 외관상 서로 정면으로 대립하는 소유 형태인 것으로 보이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소유 형식 모두 지식, 언어, 정서 등 ‘공통적인 것’의 부정과 착취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제 탈근대적인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협동과 공통성의 요소를 그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는 비물질노동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면서 ‘공통적인 것’에 기반을 둔 공동체를 사고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제 “삶정치적 노동의 이러한 세 가지 특징-협력, 자율, 네트워크 형태의 조직화-이 민주적인 정치적 조직화를 위한 견고한 기본 구성 요소를 제공한다.”(<공통체>)

이처럼 새로운 개념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이 사상가로서 네그리(및 하트)의 강점이라면, 그의 고질적인 약점은 ‘불치의’ 목적론에 있다. 그들의 저작을 읽다 보면 이미 절대적 민주주의의 객관적 토대가 존재하고, 공통적인 것에 기반을 둔 새로운 공산주의의 실현이 목전에 다가온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러한 민주주의와 공통체가 실현되지 않는지 그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문제는 그들이 ‘경향’을 ‘현실’과 혼동한다는 것, 다시 말해 좋은 것만 보고 나쁜 것에는 눈을 감는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경향을 실현하기 위한 매개로서 조직의 문제를 낙관주의적 목적론으로 대체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조직의 문제가 제기되면 곧바로 주체 자신의 분할의 문제, 곧 다중의 내적 분열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다중은 해답이기 전에 문제 자체인 것이다.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 연구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 -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