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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5 20:13 수정 : 2015.02.05 20:13

근대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은 적극적 자유가 아니라 소극적 자유에서 찾아야 한다고 필립 페팃은 주장한다. 이때의 소극적 자유는 자유주의적인 자유와는 다른 함의를 지닌 것이며, 그 핵심은 ‘비지배’에 있다는 것이 페팃의 요점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8부.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도래
23.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
: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급진민주주의
24.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 다중의 공산주의
25. 필립 페팃: 신공화주의적 민주주의
26. 자크 랑시에르: 몫 없는 이들의 몫
27.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위하여

공화국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꽤나 친숙하면서도 상당히 낯선 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첫머리에 명기되어 있는 말인 만큼, 공화주의 원리는 우리 정치 제도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연구들이 잘 보여주듯이 공화제라는 말은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시기에 처음 도입된 것이 아니라, 이미 구한말에 소개된 것이다(서희경,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하지만 군주제의 형태를 띠고 있는 당시 대한제국의 상황에서 공화제는 입헌군주제에 비해 덜 주목을 받았다가 1910년 일제의 강점으로 대한제국이 몰락하고 난 뒤 좀 더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국 형성 운동이 시작되는 것에 충격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은 본격적으로 공화제에 주목하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성립 같은 세계사의 상황도 이들이 공화국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3·1운동을 동력으로 삼아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포한 <대한민국임시정부헌장>은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라고 천명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길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 정치 제도의 가장 핵심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공화국이나 공화주의라는 말은 우리의 공론장이나 일상적인 언어활동에서 친숙하게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 가령 프랑스의 평범한 학생이나 가정주부가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공화국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에서 공화국이나 공화주의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정치학 전문 용어로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공화주의 사상은 고대 로마에서처럼 오랜 사회적 갈등의 경험에 입각하여 형성된 사상이 아닐뿐더러 프랑스와 같이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의 정신에 따라 확립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해방 이후 우리나라 지식인들 및 공론장에 큰 영향을 미쳐온 영미 학계에서 공화주의 사상이 최근에 이르기까지 주류 정치사상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실로 20세기 영미 학계에서 공화주의는 존 로크에서 발원하여 존 스튜어트 밀을 거쳐 이사야 벌린, 존 롤스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사상에 밀려 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처럼 주변부에 있던 공화주의를 영미 정치사상의 중심으로 복원한 공로는 두 명의 역사가와 한 명의 철학자에게 돌려져야 마땅하다. 존 포칵은 <마키아벨리언 모먼트>(1975)라는 대작에서 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공화주의 사상이 17세기 영국을 거쳐 18세기 독립혁명 당시 미국 정치사상의 기본적인 틀을 제공해 주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또한 퀜틴 스키너는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1998)를 비롯한 여러 저술에서 17세기 영국 시민혁명의 밑바탕에는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과는 매우 상이한 신(新)로마적인 자유 개념, 곧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이 깔려 있었다고 역설했다.

이들의 역사적인 작업을 철학적인 기반 위에서 체계화하고 정교하게 만든 사람이 필립 페팃(1945~)이다. 그는 <신공화주의―비지배 자유와 공화주의 정부>(1997)라는 저작에서 오래된 낡은 사상으로 치부되던 공화주의를 자유주의보다 규범적으로 더 포괄적이고 제도적으로 더 건전한 사상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철학적 기반에서 공화주의 정교화
자유주의 대안으로 제시
직접적인 정치 참여 중시하는
전통적 공화주의와는 거리
엘리트 통치자 견제 강조하는
“견제적 민주주의” 주장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이 주창하는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을 세 가지로 집약한다. “첫 번째 주제는 자유와 비지배의 동일시다. (…) 두 번째 주제는 법의 지배에 근거해 정치를 조직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 세 번째 주제는 시민적 견제력의 회복이다.” 이 중 첫 번째 주제가 페팃의 공화주의론의 이론적 중핵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로 그는 전체 8장 중에서 절반을 할애하여 이 개념을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의 구별법에 따르면 자유에는 “간섭의 부재”를 뜻하는 소극적 자유와 “자율의 성취”를 추구하는 적극적 자유가 있으며, 오늘날의 영미 자유주의 사상은 소극적 자유를 자신의 규범적 토대로 삼고 있다. 반면 고전 공화주의는 공적인 업무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를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적극적 자유를 강조한다는 것이 보통의 견해였다. 하지만 페팃은 근대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은 적극적 자유가 아니라 소극적 자유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때의 소극적 자유는 자유주의적인 자유와는 다른 함의를 지닌 것이며, 그 핵심은 비지배에 있다는 것이 페팃의 요점이다.

그는 우선 지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행위자는 만약 그들이 다른 행위자에 대해서 특정 권력, 특히 자의적인 간섭을 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면, 이러한 경우에 한해서만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신공화주의>) 이 정의에서 핵심은 자의적 간섭 개념이다. 이 개념은 자유주의에서는 불분명하게 남아 있는 “간섭 없는 지배”와 “지배 없는 간섭”이라는 두 상황을 좀 더 분명히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간섭 없는 지배는 가령 친절한 지배자의 경우를 가리킨다. 어떤 주인이 자신의 노예를 친절하게 인간적으로 대우해주고 그에게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해도 그는 여전히 노예에 대하여 인신적인 지배자의 지위에 있다. 곧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에게 자의적인 간섭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지배 없는 간섭은 법적인 근거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제약이나 제재를 가하는 사람, 가령 판사나 교도관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판사가 죄를 지은 사람에게 일정한 형량을 선고하고 교도관이 그 판결에 따라 그를 수감하여 감시한다면, 이들은 타인의 자유에 심하게 간섭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지배를 수반하지 않는 간섭이며, 오히려 “잠재적 지배자들을 금지하고 속박을 감소”하게 해주는 간섭이다. 따라서 문제는 간섭 일체를 금지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 간섭으로서의 지배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비지배로서의 자유다.

페팃에 따르면 비지배자유는 두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공화주의자들은 국가 개입의 가능성에 대해 덜 회의적이다. 곧 그들은 국가가 적절히 통제된다면 국가의 행동 자체를 지배의 형태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공화주의자들은 사회정책과 관련하여 더 급진적이다.”(<신공화주의>) 예컨대 불간섭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의 경우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의 계약 관계가 현저히 불평등하다고 해도 피고용자에 대한 간섭의 수준이 낮다면 여기에 관해 개의치 않겠지만, 비지배자유론은 여기에는 자의적 간섭의 여지가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에 적절한 국가개입을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치유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페팃은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공화주의 입장과는 거리를 둔다. 그는 이것을 포퓰리즘적인 관점으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입장은 오히려 “절차주의적인” 관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견제적 민주주의”(contestatory democracy)를 옹호한다. 이는 “시민들 중 그 어떤 집단, 정부 기관 중 그 어떤 당국자도 정책을 수립하는 데 지배적 통제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참여보다는 엘리트 통치자들에 대한 견제를 중시하는 입장인 셈이다.

이처럼 신공화주의 사상이 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자처하고 있음에도 과연 자유주의보다 더 매력적이고 심지어 더 진보적인 정치사상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선 자유주의자들의 반론이 있다. 스키너나 페팃이 제시하는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은 실제로는 자유주의적인 자유 개념과 별로 다를 바가 없으며, 심지어 비일관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세실 라보르드 외, <공화주의와 정치이론>). 또한 스키너와 페팃이 모두 공화주의의 지적 영웅으로 제시하는 마키아벨리가 공화주의자인가에 대해서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마키아벨리는 이들이 각색하는 것과 달리 엘리트주의적 공화주의자라기보다는 훨씬 더 급진적인, 민중적 민주주의자라는 주장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존 매코믹, <마키아벨리의 민주주의>) 그렇다면 아마도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공화주의가 과연 자유주의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해주느냐라는 문제일 것이다.

진태원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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