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3.12 19:07 수정 : 2015.03.12 19:07

에티엔 발리바르는 정치 공동체 안에 억압과 지배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근거는 피억압자들과 피지배자들 자신의 단결된 힘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8부.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도래
23.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
: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급진민주주의
24.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 다중의 공산주의
25. 필립 페팃: 신공화주의적 민주주의
26. 자크 랑시에르: 몫 없는 이들의 몫
27.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위하여

에티엔 발리바르(1942~)는 알튀세르의 여러 제자들 가운데 그의 사상을 가장 충실히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애써온 인물이다. 1968년 5월 혁명을 계기로 마오주의에 가담한 바디우, 랑시에르 등은 알튀세르에 대한 격렬한 비판가로 돌아섰지만, 발리바르는 1980년 알튀세르가 정신착란의 와중에 부인인 엘렌 리트망을 목졸라 살해하여 면소 판결을 받고 공적인 무대에서 퇴장할 때까지 줄곧 그의 사상에 충실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적 생명력이 고갈되고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서구 마르크스주의 정당 역시 쇄신의 능력을 상실해 가던 1980년대 이후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려는 알튀세르의 작업을 넘어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근원적인 탈구축 작업을 수행하면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는다.

발리바르가 볼 때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는 이데올로기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대중들의 공포>). 곧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모순을 다른 사회적 모순들이 근거해야 하는 중심적인, 더 나아가 유일한 모순으로 간주했으며, 더욱이 이를 진화주의나 종말론적인 역사철학에 따라 사고했다. 이러한 맹목은 곧바로 파시즘과 나치즘의 집권이라는 대가를 낳았으며, 결국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개념과 호명(interpellation) 개념에 입각하여 이데올로기론을 개조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여전히 난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그는 “이데올로기에는 역사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데올로기가 역사적으로 전개되고 위기와 전환을 겪는 과정을 충실히 분석할 수 없었다. 둘째, 그의 이론은 이데올로기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재생산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데올로기가 성적 차이나 인종주의 및 민족주의 같은 다른 모순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제대로 사유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쇄신은 발리바르가 1980년대에 시도했던 마르크스주의 탈구축의 핵심 쟁점이었다. 그는 1988년 ‘알튀세르의 유산’이라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기능작용 속에서 특권적인 능동적 역할을 피억압자들 또는 피착취자들에게 부여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이데올로기를 지배 계급에 의한 조작과 기만 또는 주입과 강제로 보는 관점과 단절하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가장 충실한 제자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열어
프랑스 인권선언 적극적 해석
‘평등자유명제’ 개념 창안
‘시민들의 연대와 단결만이
자유와 평등을 가능하게 한다’

이데올로기를 왜곡된 관념이나 환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러한 왜곡된 관념이나 환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하고 무지한 대중들이라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이데올로기를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 지배 계급의 능력이라는 생각을 전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할 때 품고 있었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상상계로, 곧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생활세계 그 자체로 정의하면서 이러한 두 가지 관념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데올로기는 의식적인 관념이나 표상들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개인들과 대중들이 모두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상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이어야 한다.”(‘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

그런데 어떤 상상적 경험이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일 수 있는가? “그것은 우선 지배자들의 ‘체험된’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세계’에 대한 인정과 저항을 동시에 함축하는 피지배대중들의 ‘체험된’ 경험이라고 반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같은 글) 다시 말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피지배 대중들의 상상계에 뿌리를 두고 그러한 상상계를 자기 나름대로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 피지배 대중들의 상상계의 지배어는 자유와 평등, 박애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지배어는 지배 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대중들의 혁명적 봉기를 통해 선언되고 또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인권선언)은 이를 대표하는 문건 중 하나다. 발리바르가 이데올로기에서 대중들의 존재론적 우위라고 부른 것은, 이러한 지배어들이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되고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되었다는 사실(‘인권선언’은 프랑스 헌법의 전문으로 사용된다)을 가리킨다.

물론 이러한 원리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제도적 매개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언은 되었지만 실제 제도에서는 최소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19세기 중엽까지 정치적 선거권이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개인들(이른바 “능동 시민들”)에게만 허가되었다는 점이나 여성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권리를 향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사례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근대 사회의 어떤 지배 집단도 피지배 대중의 이러한 상상계를 무시하고서는 또는 그러한 상상계를 재구성하고 활용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 상상계 및 제도화에서 피지배 대중들은 존재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권선언’을 이중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한편으로 중세의 신분적 예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권선언’은 정치적 해방을 선언하고 있지만, 그것이 말하는 정치적으로 해방된 인간 내지 시민 대부분은 아무런 소유도 없이 자본의 굴레에 예속된 프롤레타리아들이다. 따라서 ‘인권선언’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할수록,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의 현실은 은폐되고 만다.(마르크스,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

하지만 발리바르가 보기에 이러한 해석은 ‘인권선언’의 의의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방의 정치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도 장애가 된다. 발리바르는 ‘인권선언’의 핵심은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긍정한 데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가 뜻하는 것은, “피지배자들의 해방은 오직 그들 자신에 의해 쟁취될 수 있다”(<평등자유명제>)는 원칙이다.

근대 이전까지 정치 공동체는 신의 율법이나 자연적인 질서(인간 본성이나 혈통과 같은)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인권선언’이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선언하면서, 정치 공동체는 더 이상 신성하거나 자연적인 질서에 기초를 둘 수 없게 되었다. 곧 정치 공동체는 이제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자유와 평등을 지키고 보장하기 위해 세운 정치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정치 공동체 안에 억압과 지배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근거는 피억압자들과 피지배자들 자신의 단결된 힘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곧 시민들의 평등 없이 시민들의 자유 없고, 또 역으로 시민들의 자유 없이 평등 없으며, 시민들 자신의 연대와 단결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뜻이다. 발리바르는 이를 “평등자유명제”라고 부르며, ‘인권선언’의 핵심에는 바로 이 명제가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이 명제는 1789년 당시에만 유효했던 명제가 아니라, 그 이후 역사적으로 존재한 거의 모든 해방 운동의 근거로 작용했던 명제다. 가령 19세기 후반의 여성운동, 20세기 초반의 식민지 해방운동, 20세기 후반의 흑인인권운동이 모두 이 명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인권선언’과 그 핵심으로서 평등자유명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보 정치의 주춧돌을 이룬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주장이다. <끝>

(발리바르 편을 끝으로,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연재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 연구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 -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