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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직전 평양의 중국대사관 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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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교수의 북-중 교류 60년
(17) 한국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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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국공전쟁때 도움 언급하며
“조선 지원요청 거부할 명분 없다” 뒤이어 지도부 의견 물어보니
주더 “우리 문제부터 해결해야”
류사오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저우언라이 “국제전 비화 가능성 커”
잇단 신중론…가오강은 달랐다
“조선 은혜 잊어서야” 참전 찬성 김일성과 1차 회담을 마친 마오쩌둥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자신을 제외한 3명의 서기와 동북의 가오강, 총참모장 대리 녜룽전까지 포함한 비밀회의를 소집해 김일성의 방중 사실을 공개했다. “간밤에 김일성 동지와 한차례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1개 병단, 3개 군만 지원해주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스탈린도 3주일 안에 전쟁을 종결시키면 미국도 끼어들 수 없다며 무기와 공군력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는 이어서 도의적 책임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일성은 동북에서 20년 가까이 일본과 무장투쟁을 벌였다. 30년대 초, 우리가 장시성(강서성) 소비에트에 있을 무렵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의 지휘관 중 한 사람이었다. 15년간 장백산 지역에서 일본군에게 타격을 가한 경력 때문에, 8년간 일본과 전쟁한 우리를 가볍게 볼지도 모른다.” 국공전쟁 시절에 받았던 도움도 거론했다. “1947년 초, 린뱌오의 동북민주연군은 계속 국민당군에게 밀렸다. 북조선은 패배한 우리 전사들의 든든한 피난처였다. 싸우다 지면 무조건 강을 건넜다. 김일성 정권 덕에 동북의 우리 병력은 액운을 면하고 전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일성은 소련 점령군 수중에 있던, 다량의 무기와 탄약을 우리 쪽에 제공했다. 북조선에 피신해 있던 우리 쪽 지휘관들은 김일성을 볼 때마다 조선 형제들이 환난에 처하게 되면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해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조선은 남북의 구분이 없었다. 지금 조선은 38선을 중심으로 남북에 정권이 들어섰다. 최근 이삼십년간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군은 우리의 혁명 사업에 힘을 보태고 희생을 치렀다. 이제 우리는 승리했다. 조선의 요청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지금 도의적 책임이 우리를 구체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마오는 끝으로 황소의 난과 이극용에 얽힌 고사를 인용했다. “지금 우리의 처지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사타국 신세가 됐다. 동북왕 가오강도 원하건 원하지 않건 한번은 이극용이 되어야 한다.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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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전쟁 시절 화북지역의 야전군을 지휘한 녜룽전(왼쪽 셋째)과 합류한 동북의 지휘관들. 오른쪽부터 첫째가 린뱌오, 둘째가 가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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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세계대전 가능성 생각해보라”
마오, 생각지도 않은 질문 꺼냈다 마오쩌둥이 가오강을 동북왕이라 부르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린뱌오와 함께 동북에서 제4야전군을 지휘한 가오강은 린뱌오가 동북을 떠난 뒤 중공이 최초로 정부 명칭을 붙인 동북인민정부 주석과, 중공 동북국 서기, 동북군구 사령관을 겸한 동북의 최고지도자였다. 당시 동북인들 중에는 가오강의 이름은 알아도 마오쩌둥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집회가 열릴 때마다 가오 주석 만세가 진동했으면 했지 마오 주석 만세를 부르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건물도 전무했다. 어딜 가나 가오강과 스탈린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마오쩌둥은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가오강을 부를 때마다 동북왕 소리를 빼놓지 않았다. 일종의 야유였다. 마오의 지명을 받은 가오강은 여유만만했다. 담배를 지그시 물고 불을 댕겼다. 한동안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 동지의 의견은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의미다. 현재 동북에 있는 나는 동지들과 생각이 다르다. 첫째, 조선의 당과 인민들이 베풀어준 은혜를 잊어선 안 된다. 내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동북전쟁 시절 적시에 북조선 경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국민당 군에게 거의 먹혔다. 군대를 빌려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은혜를 갚는 중국인의 전통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 둘째, 조선이 통일되면 조선반도는 사회주의 진영의 전초기지가 된다. 바다 건너 일본을 호랑이처럼 두 눈 부릅뜨고 위협할 수 있다. 우리의 경제회복과 건설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 병력을 집중해서 기습을 가하면 3주일 내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 남한의 군대는 모병한 지 2년도 안 되는 오합지졸이다. 전쟁 경험도 없고, 장비도 제대로 없다. 있어도 다룰 줄도 모른다. 일격에 붕괴시킬 수 있다. 넷째, 우리는 수십년 동안 혁명과 전쟁으로 일관해왔다. 혁명과 전쟁은 일종의 도박이다. 모험정신을 상실하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가오강은 평소 주더나 저우언라이를 우습게 알았다. 특히 류사오치에게는 “어디서 뭐 하던 사람인지 모르겠다”며 대놓고 멸시할 때가 많았다. 총참모장 녜룽전의 의견은 간단했다. “중앙의 결정에 복종하겠다. 군사위원회 주석의 명령을 충실히 집행하겠다.” 자신의 의견을 밝힌 참석자들은 마오쩌둥을 주시했다. 손에 담배가 한 개비 들려 있었다. 몇번 입에 댔지만 불을 붙이지 않고 내려놓기를 반복하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을 녜룽전에게 던졌다. “조선반도가 전화에 휩싸이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지 생각해봐라.”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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