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은 아늑한 동네다. 마을 뒤쪽 승학산 자락이 마을을 비단처럼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어 마을 이름이 ‘보라’가 됐다.
보라마을은 ‘밀양의 얼굴’이었다. 마을 주민 이치우(당시 74살)씨의 죽음으로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의 중심이 되면서다. 이씨는 “살아서 송전탑이 서는 것은 볼 수 없다”며 2012년 1월 마을 어귀에서 분신했다. 이씨의 죽음은 주민을 하나로 모았고, 촌로들은 거리의 투사로 변신했다.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1년 농사를 포기했고, 부족한 잠을 쪼개 불침번을 서가며 공사 자재가 쌓인 적치장을 감시했다.
마을의 풍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올해 1월부터다. 한국전력공사(한전)와 이미 합의한 일부 주민들의 설득으로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주민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지난달 7일에는 가구의 대부분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인심도 변해갔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주민들은 마을에 온 기자에게 ‘끼니 거르면 안 된다’며 도시락을 챙겨줬고, 마을회관을 숙소로 내어줬다. ‘보라마을 명예주민’이라는 별명도 지어줬다. 하지만 주민 대다수가 찬성으로 돌아선 지난달 이후로 주민들은 숨을 죽였다.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어쩌다 통화가 된 주민도 합의에 대해선 한사코 “모른다”고만 했다. 한전과 합의하지 않고 버티던 9가구도 지난 14일 최종 합의를 봤다. 보라마을 39가구 주민 90여명이 모두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다.
힘없는 시골 주민들에게 한전은 거대한 벽이었다. 대부분 70~80대인 주민들은 지난 8년 동안 이어온 기약 없는 싸움에 지쳐갔다. 보상금을 내건 한전의 회유가 그 피로감을 파고들었다. 김응록(72)씨는 “보라마을 주민으로 자부심이 있었다. 이치우씨 죽고 나도 싸우다 가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죽는다고 해도 공사는 계속 진행됐다”고 했다. 이치우씨의 동생 이상우(74)씨도 “힘에 부쳤다”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형님 볼 면목이 없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주민간 갈등과 반목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름 밝히기 꺼린 한 주민은 “평생 가족 같던 이웃과 등지는 일이 참기 힘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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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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