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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진 소설 <첫사랑>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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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진 소설 <1화>
여름 방학을 이틀 앞둔 7월의 교정은 열기로 뜨거웠다. 어깨를 짓누르던 기말고사의 긴장감은 사라졌고,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든 학생들도 방학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이 되었다. 게다가 오늘은 한 학기 동안 수고한 선생님들을 위로하기 위해 교직원 체육대회가 열려 분위기를 더했다. 배구대회가 한창이었고, 아이들은 저마다 담임 선생님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속한 팀을 응원했다.
사사키 료마의 응원은 압권이었다. 군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사키는 복도에서도 절도 있게 걸었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보통 때라면, 혹은 다른 학교에서라면 사사키의 그런 태도는 놀림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고, 80연대와 인접한 대구중학교의 분위기는 반도의 다른 어떤 학교보다 군대와 닮아 있었다. 백군 응원단을 이끄는 사사키의 구호는 흡사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전장의 소대장 같았다.
“보라! 저 용맹한 자태를! 외쳐라! 승리를!”
사사키는 큰 소리로 백군 응원단을 질타했다.
“못난 놈들, 대체 어디까지 못난 모습을 보여줄 작정인가! 더 크게, 더 크게! 대일본 제국의 학생답게 더 크게!”
사사키의 질타에 주눅 든 후배들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고함을 질렀지만 사사키의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다. 선창하는 사사키의 목소리가 80명이 넘는 2학년들의 목소리를 압도했다.
“여학생은 일본인이 아닌가? 모깃소리는 집어치워! 대일본 제국의 여자답게 굴란 말이다!”
사사키의 질타에 백군 여학생들은 울상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빽빽 고함을 질러댈 수밖에 없었다.
사사키는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줄곧 장래 희망을 항공병이라고 학생생활부에 적었다. 빨리 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항공사관학교에 진학해서 항공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드시 항공병이 되어 원수 아메리카와 영국을 격멸하겠다고 다짐했다. 적 함대를 향해 돌진해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고 했다. 죽어서 영원히 일본의 남아로 살 것이라고 했다.
하긴 군인이 되고 싶은 남학생이 사사키뿐만은 아니었다. 보병 제80연대가 주둔하고 있는 대구부는 조선 반도 내에서 이름난 군사도시였다. 80연대 병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도심을 행군할 때 대구부 주민들이 모두 나와 구경했다. 5만의 일본인뿐만 아니라 12만에 이르는 조선인들도 그 늠름한 모습에 감동하기 일쑤였다. 도심을 행군하며 땅바닥을 힘차게 구르는 병사들의 군홧발 소리에 남학생들은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대구중학교는 보병 제80연대와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철조망 너머로 들려오는 군가와 훈련 소리, 사이렌 소리는 태평양의 전세가 불리하다는 엄중한 상황과 어울려 묘한 긴장감을 전하는 동시에 전의를 불태우게 했다. 군인들이 우르르 지축을 울리며 달려가는 군홧발 소리는 천지를 울리는 북소리가 되어 교실에 앉은 남학생들의 영혼에 도착했다. 교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작은 목소리는 둥둥둥둥둥둥 귓전을 울리는 북소리에 묻혀 소멸했다.
* 이 소설은 고바야시 마사루(小林勝)가 1957년 문학계(文學界)에 발표한 단편소설 〈일본인 중학교〉를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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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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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진
2005년 장편소설 《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2001년 단편소설 〈게임〉으로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능소화》, 《유이화》, 《아버지의 오토바이》, 《몽혼》, 《북성로의 밤》과 소설집 《마라토너의 흡연》, 《진실한 고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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