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 소설 <3화>
우메하라 게이이치.
아카시아 꽃향기가 황홀하게 교정으로 내려앉던 날 그는 학교로 왔다. 5월의 두 번째 월요일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에 앞서 새로 전근 오신 선생님이 소개되었다.
“우메하라 선생님, 앞으로.”
학생주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앞으로 나선 선생님은 젊은 남자였다. 겨울 하늘보다 더 선명한 푸른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키는 180센티쯤 될까. 양복 속에 숨어 있을 굳건한 어깨와 단단한 다리를 상상하며 리에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학생들 앞쪽에 서 있던 우메하라 선생님이 학생주임 선생님의 호명에 따라 횡렬로 서 있는 다른 선생님들 앞으로 나가 섰다. 어림잡아도 다른 선생님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컸다.
“새로 4학년의 영어 지도를 맡으실 우메하라 게이이치 선생님입니다. 일동 차렷! 우메하라 선생님께 절!”
학생들이 절을 하느라 고개를 숙였지만 리에는 우두커니 서서 우메하라 게이이치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학생주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들었지만 들리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학생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고, 담임인 우에요기 나츠미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리에는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올봄에 동경고등사범학교 영어과를 졸업한 우메하라 게이이치입니다. 여러분들, 잘 부탁합니다.”
그가 자기소개를 했을 때, 리에는 전율했다. 마키지타(まきじた: 巻(き)舌)*였다. 내지의, 그것도 도쿄 사람들이 쓰는 표준어. 리에가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부모님 몰래 듣던 라디오 방송에서나 듣던 아름다운 도쿄 억양이었다. 혀끝을 말듯이 굴리는 소리, 리에의 후쿠오카 억양을 단번에 촌스럽게 만들어버리는 소리였다. 이제 막 사범학교를 졸업했으니 스무 살쯤 되었으리라. 리에보다 겨우 네 살이 많았다. 선생님의 도쿄 말씨와 나이를 생각하는 리에의 얼굴이 붉어졌다.
우메하라 선생님이 부임하기 전까지, 리에는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자신의 말에 친구들이 귀 기울이기를 바라며 종일 재잘거렸다. 우메하라 선생님이 온 뒤로도 여전히 재잘거렸다. 그러나 영어 시간만 되면 리에는 입을 다물었다.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메하라 선생님이 그 아름다운 도쿄 말씨로 ‘누가 한번 읽어볼 사람?’이라고 물어도 리에는 결코 손을 들지 않았다. 반 학생들 중 누구보다 영어 읽기에 자신이 있었고, 이전까지는 누구보다 먼저 손을 들던 리에였다.
영어 시간만 되면 리에는 침묵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 중 누군가가 책을 읽겠다고 손을 들면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동급생들 중에는 도쿄를 부모님의 고향으로 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그들의 발음은 모두 촌스러웠다. 리에 아버지의 고향인 후쿠오카는 물론이고, 나고야, 난부, 사쓰마, 심지어 오사카의 발음 역시 상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뭐랄까, 후쿠오카 발음은 촌스럽기 짝이 없을 만큼 투박했고, 오사카의 발음은 장사치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동급생들의 발음이 우메하라 선생님이 오신 뒤로는 참고 들어주기 힘들 만큼 불쾌한 발음이 되고 말았다.
리에는 모든 아이들이 책 읽기를 거부하고, 그래서 우메하라 선생님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아름다운 도쿄 말씨로 영어 문장을 읽어주기를 바랐다. 일본어가 아닌 영어를 읽을 때도 도쿄 발음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후쿠오카 사투리를 쓰는 아이는 일본어로 말할 때뿐만 아니라 영어를 읽을 때도 여전히 후쿠오카 사투리가 배어났다.
리에는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촌스러운 후쿠오카 발음이 세상 밖으로 나와 우메하라 선생님의 아름다운 귀에 들리는 것을 경계했고, 침묵함으로써 우메하라 선생님의 아름다운 도쿄 말씨를 듣고 싶어 했다. 그의 굴러가는 듯한, 어딘가 말리는 듯한 말씨를 듣고 있노라면 야릇한 몽상에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집으로 돌아가 짜증을 내곤 했다.
“엄마는 왜 도쿄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어요?”
“리에, 어쩜 그런 말을 하니?”
“이게 뭐야? 이 촌스러운 목소리를 어떡하라고?”
“어머,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리에짱의 목소리가 얼마나 예쁜데?”
“목소리가 예쁘면 뭐해? 말씨가 촌스럽잖아!”
“왜? 누가 무슨 가슴 아픈 말이라도 했니?”
“아~ 몰라 몰라. 짜증 나.”
리에는 방문을 콱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메하라 선생님이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학교에 다닌 것 역시 그의 공로가 아니다. 리에 자신이 내지가 아니라 조선 반도에서 태어나 완전한 후쿠오카 말씨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씨, 그러니까 이 지방, 저 지방 억양이 다 섞인 반도인 특유의 말씨를 쓰는 것 역시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3학년 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3박 4일의 수학여행 동안 리에는 도쿄 말씨를 배우려고 부지런히 애를 썼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뒤, 마쓰모리 카나에와 사이키 소노코까지 세 사람이 이제는 도쿄 말씨를 쓰자고 굳게 약속도 했다. 그러나 보름도 가지 않아 말씨는 어느새 후쿠오카 출신의 부모를 둔, 반도에서 태어난 일본인의 촌스럽고 우매한 말씨로 돌아가 있었다. 카나에나 소노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 まきじた: 巻(き)舌. 혀끝을 말듯이 힘차게 발음하는 어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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