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 소설 <4화>
자기소개를 마친 우메하라 선생님은 선생님들이 서 있는 줄 사이로 들어갔지만, 그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머리 하나가 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입고 있는 카키색 국민복과 다른 푸른 양복 때문만도 아니었다.
처음 부임하던 날 이후 우메하라 선생님도 다른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카키색 국민복을 입었지만 그는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선생님들이 함께 걸어오고 있어도 그는 홀로 걷는 사람처럼 우뚝했다.
씻기 편하게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다른 남자 선생님들과 달리 우메하라 선생님은 젊음을 발산하는 숱 많고 검은 머리카락을 기름을 발라 붙였다. 작고 마른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큰 키에 곧고 늘씬하게 뻗은 허리.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게다를 신는 바람에 안짱다리처럼 되어버려 깐죽깐죽 걷는 대부분의 선생님들과 다르게 우메하라 선생님은 시원시원하고 힘차게 다리를 뻗었다. 그는 말 그대로 청춘의 상징이며, 아름다운 도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흰 얼굴과 당당한 덩치 때문만도 아니었다. 우메하라 선생님은 그 모든 것이 집적된 존재, 세상에서 가장 생기 넘치고 가치 있는 남자, 싱그럽게 넘실대는 강물이었다. 그 부푼 강물에 발을 담그면 리에 자신도 금세 푸른 물빛으로 물들 것만 같았다.
대구중학교의 선생님들은 지쳐 있었다. 선생님들만 지친 게 아니라, 대구 부민, 아니 모든 일본 신민들이 지쳐 있었다. 1941년 시작한 전쟁이 4년째 이어지는데다, 패색이 짙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진주만 공습을 시작으로 선전을 펼쳐온 태평양 연합함대가 괴멸됐으며, 태평양의 제공권을 상실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학교는 끝없는 공출과 노역, 군사훈련에 시달렸고, 선생님들은 자주 짜증을 내거나 한숨을 쉬었다. 학생들에게는 전시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군인정신으로 단련해야 한다고, 전선의 신군과 신민은 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그들의 어깨는 늘어졌고, 주름마다 피로가 깊게 배어 있었다.
우메하라 게이이치 선생님은 달랐다. 젊은 그는 늘 활기찼으며, 어떤 경우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가 싱긋 미소 지을 때는 어디선가 봄바람이 일어나 살랑거렸고, 큰 소리로 활짝 웃을 때는 유난히 흰 이가 햇빛을 받아 빛났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에 그의 흰 이는 조약돌처럼 빛났다.
얼마 전 점심시간에는 우메하라 선생님과 부딪힐 뻔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리에는 국어 시간에 외울 시를 암송하면서 걷는 중이었다. 목조로 지은 교사 창문 밖으로 남학생들이 고개를 내밀고 운동장에 나와 있는 남학생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는 2학년 2반 교실 앞을 지나, 리에는 교사의 서쪽에 있는 수돗가로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물을 마실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으며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시를 다 외우고 싶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어떤 학생이 드르륵 창문을 올리고 총채를 터는 게 보였다. 아침에 감은 머리 위로 행여 먼지라도 앉을까 싶어 서둘러 걷는다는 것이 그만 동서로 이어붙인 교사의 중간 통로에서 나오던 우메하라 선생님과 부딪힐 뻔했다. 우메하라 선생님은 ‘어이쿠!’ 하면서 살짝 몸을 돌려 피했다. 그가 피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틀림없이 부딪혔을 것이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저 멀리서 우메하라 선생님이 다른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걷고 있을 때도 단번에 알아보는 그녀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메하라 선생님이 불쑥 나타나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리에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리에에게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을 안겨다 주었다.
“스미마셍! 스미마셍!”
리에는 연방 허리를 숙였다. 자신의 후쿠오카 말씨가 어떻게 들릴지 걱정할 겨를도 없었다. 선생님과 부딪힐 뻔했던 것이다. 호통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우메하라 선생님은 하얀 이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다.
“리에짱, 괜찮아?”
“스미마셍.”
리에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허리만 연방 숙였다.
“너무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우리 둘이 부딪힐 뻔한 건데, 리에짱이 그렇게 미안해하면 나도 무척 미안해해야지 않아?”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아, 참. 그러지 말래도. 그럼 나도 스미마셍.”
우메하라 선생님이 고개를 살짝 숙였을 때 리에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고 말았다. 어쩜 선생님이 나한테 이렇게 하실까.
빡빡머리에 언제나 참나무로 만든 지휘봉을 들고 다니며 잔소리를 하시는 혼조 선생님이었다면 대뜸 “그렇게 정신을 다른 데 팔고 다니는 것은 위험하지 않나!”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어쩌면 교무실로 불러 반성문을 쓰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메하라 선생님은 달랐다. 국민학교 때부터 중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다른 선생님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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