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 소설 <5화>
우메하라 선생님이 배구공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강스파이크!”
리에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선생님이 또 한 번 강스파이크로 백군 코트에 멋지게 공을 꽂아 넣기를 바랐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는 혹시 자신의 마음을 들킨 건 아닐까 싶어 입술에 힘을 주어 입을 꾹 다물었다. 리에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우리 편이 이기기를 원하는 응원 이상의 감정이 묻어 있었다. 리에는 옆에 앉아 응원하는 마쓰모리 카나에를 슬쩍 훔쳐보았다. 다행히 카나에는 리에의 다소 흥분이 감돌던 목소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리에의 바람대로 우메하라 선생님은 하늘로 솟구쳐 올라 스파이크를 날렸고, 공은 그대로 빈 곳에 꽂혔다. 첫 번째 세트를 가볍게 이긴 청군은 두 번째 세트에서도 17대 6으로 앞서 가는 중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세 번째 세트 없이 두 번째 세트에서 결판이 날 것 같았다.
“리에도 이상한 소문 들었어?”
왼쪽에 앉아 있는 사이키 소노코였다.
“무슨…….”
무심한 듯 대답하면서도 리에는 불길한 무엇을 느꼈다. 그럴 리 없는, 그래서는 안 되는 잔인한 소문이었다. 우메하라 선생님이 조선인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었다. 저처럼 아름다운 도쿄 말씨를 쓰는 사람, 누구보다 싱그러운 남성을 조선인으로 생각하다니! 리에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조심스러운 생각이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우메하라 선생님을 심하게 질투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글쎄,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소노코는 망설였다. 여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우메하라 선생님이 어쩌면 조선인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었다. 헛소문을 냈다가 급우들의 핀잔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저처럼 아름다운 인격체를 두고 조선인 운운한다는 것은 죄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이 조선인이라고, 앞에서 허리를 숙이며 비굴하게 웃고는 돌아서서 칼을 들이댄다고, 그래서 어떤 중요한 일도 맡길 수 없다고, 일본인의 원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조선인이라고 말이다. 저처럼 싱그럽고 아름다운 우메하라 선생님 곁에 그런 조선인을 세운다는 것은 말이 될 수 없었다.
‘어쩜 그런 무서운 말을…….’
리에는 원망하는 낯빛으로 소노코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금세 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렇게 멋진 선생님이 조선인일 수 있을까? 저처럼 아름다운 도쿄 말씨를 쓰는 선생님이 말이야.”
“리에짱 말이 맞아. 하지만 우메하라 선생님의 숱 많은 검은 머리카락은 어쩐지 일본 남자들의 짧은 머리와 다르지 않아?”
소노코는 여전히 확신 없는 말투였지만 의심을 거두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거야 선생님이 대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고, 여자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일부러 머리를 기르는 것이겠지.”
“하얀 이는 또 어때? 조선인들은 모두 이가 희잖아?”
“참 나, 소노코! 이가 흰 것도 죄니? 괜히 자기 이가 하얗지 못하니까 시기하는 거야.”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의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조선인들은 일본인보다 확실히 이가 희다. 그네들은 어릴 때부터 단것을 먹지 못했기에 이가 튼튼하고, 이도 잘 닦기 때문에 이가 희다. 하지만 일본인 중에도 이가 흰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가령, 교장 선생님도 이가 흰 편이지 않은가. 비록 머리가 벗겨져서 볼품이 없는 노인이지만 말이다.
설령 우메하라 선생님이 몇 가지 조선인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아름다운 말씨는 도쿄 토박이임을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굴러가는 듯한, 혀를 살짝 마는 듯한 세련된 도쿄 말씨는 다른 지방 출신의 일본인들조차 쓰기 힘들다. 그것은 작년 도쿄 수학여행 때 소노코도 경험한 일이지 않은가.
“사사키는 우메하라 선생님이 도쿄 말씨를 쓰는 것도 조선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대…….”
“학생 연대장이 어째서 그런 못된 말을!”
“조선말에 어려운 발음이 많아서 조선인들은 굴러가는 듯한 도쿄 말씨를 쉽게 배운다는 거야.”
“말도 안 돼.”
리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마침 배구 2세트가 끝이 났다. 21대 9. 청군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청군 응원단 쪽에서 군가가 터져 나왔다.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할 것 없이 모두 군가에 익숙했다. 더구나 대구중학교 학생들은 80연대와 인접한 덕분에 군가에 더욱 익숙했고, 군사훈련에도 능했다. 경성의 한 신문은 전국의 중학교 중에 대구중학교가 군사훈련이 가장 잘되어 있는 학교라고 보도한 적도 있었다. 그 보도가 나왔을 때 교장 선생님은 ‘군사훈련 최우수 학교’라고 쓴 큰 플래카드를 교문에 한참 동안 걸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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