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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0 09:49 수정 : 2014.01.28 10:22

조두진 소설 <첫사랑> ⓒ이현경



조두진 소설 <6화>



점심시간에 청군에 속한 학생들은 저마다 싸온 도시락을 들고 숲 그늘로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초밥을 먹는 아이들의 표정이 맑았다. 청군 학생들이 숲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동안 연대장 사사키는 백군 아이들을 재촉해 서둘러 밥을 먹게 한 뒤 모두 운동장 한자리에 모았다. 오전에 축구와 배구에서 연거푸 백군이 패한 것은 응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사사키는 열을 올렸다. 이글이글 타는 태양 아래 백군 아이들은 풀이 완전히 죽어 있었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백군이 지는 것도 안타까운데, 점심시간마저 뜨거운 햇볕에 빼앗기고 보니 괴로워 미치겠다는 얼굴들이었다.

오후에 남은 경기는 스모였다. 청군과 백군에서 각각 열 명의 선생님들이 나와서 단체전을 펼치게 되어 있었다. 양쪽에서 열 명이 차례로 출전해 한쪽 편 선수들이 모두 쓰러질 때까지 연속해서 겨루는 경기였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선수가 있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전체 선수들이 차례차례 겨루는 경기였다.

사사키는 스모는 꼭 이길 수 있다고, 이겨야 한다고 핏대를 올렸다. 하긴 스모라면 백군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백군의 구로자와 야스히로 선생님은 스모 선수까지는 아니지만 실력자였다. 군인정신이 투철한 선생님으로 관동군에서 5년이나 복무한 경력도 갖고 있었다. 선생님은 관동군 시절 스모대회에 나가 준우승하면서 포상 휴가도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스모에서는 구로자와 선생님이 속한 편이 늘 승리를 거뒀다. 구로자와 선생님이 몇 번째 선수로 출전하느냐에 따라 몇 명이나 살아남는지가 결정될 정도로 선생님의 실력은 월등했다.

청군과 백군 양쪽에서 각각 열 명씩 마와시*를 맨 스무 명의 역사들이 앞으로 나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로 돌아갔다. 청군에서 맨 먼저 출전한 역사는 사이토 다카시로 국어 선생님이었다. 우메하라 선생님은 여섯 번째 출전자로 대기했고, 백군의 강자 구로자와 야스히로 선생님은 아홉 번째 선수로 대기하고 있었다. 백군으로서는 가장 적절한 대진 순서를 짠 것처럼 보였다. 구로자와 선생님이 너무 앞에 출전해서 일방적으로 이기면 재미가 없을 것이고, 또 초반부터 청군 역사들을 상대하다가 힘이 빠지면 최종적인 승리를 놓칠 위험도 있었다.

청군의 첫 번째 역사 사이토 다카시로 선생님과 백군의 첫 번째 역사 이와세 히카루 선생님이 치카라미즈**로 입안을 헹구었다. 전문적인 선수들은 아니라지만 전통 스모 경기라면 역시 절차가 중요했다. 백군의 이와세 선생님은 정말 역수가 힘을 주기라도 한다는 듯이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역수를 전해준 나카에 유토 선생님이 그만 마시라고 말하고 나서야 이와세 선생님은 겸연쩍은 듯 웃으며 물그릇을 넘겼다.

두 역사가 씨름판에 올라와 차례로 소금을 뿌리자 양쪽 응원석이 번갈아 환호성을 올렸다. 스모장에서 소금은 부정을 막고, 씨름판을 맑은 기로 채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역사들이 시합 도중에 상처를 입더라도 소금의 살균력 덕분에 큰 상처로 덧나지 않는다는 효과도 있었다.

심판을 보는 체육 선생님이 두 역사의 마와시가 단단히 매어졌는지 점검했다. 두 선수는 심호흡을 하며 양쪽에 대기했다. 체격으로 보아 사이토 선생님의 우세가 점쳐졌다. 옷을 입었을 때도 몸이 좋아 보였던 그는 막상 옷을 벗고 스모 복장이 되자 훨씬 단단해 보였다. 스모마게***까지 했더라면 진짜 스모 선수처럼 보였을 것이다.




* まわし. 우리나라 씨름의 샅바와 같은 것으로 역사의 계급에 따라 とりまわし와 けいこまわし의 두 종류가 있다.

** 力水: ちからみず. 역사가 입에 머금어 힘을 내는 물을 말한다.

*** 相撲まげ. 역사의 특이한 머리 모양을 가리키는 말로 시대에 따라 명칭과 모양이 조금씩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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