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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2 10:12 수정 : 2014.01.28 10:22

조두진 소설 <8화>



다시 씨름판으로 나서는 우메하라 선생님에게 역수를 건네는 청군 선생님은 없었다. 우메하라는 저 스스로 물그릇을 찾아 입안을 헹구었다. 어찌 된 일인지 소금을 건네는 사람도 없었다. 우메하라가 너무 잘 이겼기 때문에 마음을 놓은 것일까. 역수도 소금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개의치 않는다는 듯 땀을 닦으며 씨름판으로 올라온 우메하라 선생님은 청군 응원단을 향해 두 팔을 들며 씩 웃었다. 눈부시게 하얀 이가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하지만 구로자와 선생님은 역시 대단했다. 관동군에서 준우승까지 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우메하라 선생님의 겨드랑이 지르기 공격을 받으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힘껏 우메하라 선생님의 턱을 밀어 쓰러뜨렸다. 고개가 꺾인 우메하라 선생님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우아아아아아!”

백군 응원단이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모든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구로자와 선생님을 응원했다. 우메하라를 좋아하는 여학생들, 청군이 아니라 백군을 응원하게 되어서 아쉽다고 투덜대던 게이코도 깡충깡충 뛰며 환호하고 있었다.

백군 응원단의 우렁찬 함성에 눌려 청군 응원단은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왜 아무도 응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럴 때일수록 더 큰 소리로 응원을 해야 우리 편 역사들이 힘을 내지 않을까.

리에는 우메하라를 바라보았다. 모래를 털며 일어난 우메하라는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구로자와 선생님의 공격이 예상 밖으로 강했던 것이리라. 구로자와 선생님과 마주 앉은 우메하라 선생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번 판에도 질까 두려운 것일까.

심판의 시작 소리와 함께 재빨리 일어선 우메하라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며, 두 팔로 구로자와 선생님의 허리를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강하게 밀착시키며 구로자와 선생님을 밀어붙였다. 엄청난 힘이었다. 구로자와 선생님이 안간힘을 다해 버텼지만 결국 모래판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밀려난 구로자와 선생님의 표정이 기괴했다. 마치 큰 나무를 붙들고 스모 경기를 펼친다는 듯 난감한 표정이었다.

“에~.”

“어쩜.”

백군 응원석에서 가늘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힘과 힘으로 부딪치면 우메하라 선생님이 구로자와 선생님을 이길 것이라는 불안감이 백군 응원단 사이에서 빠르게 번지는 것을 리에는 느꼈다.

백군 응원단의 기세가 꺾인다면, 반대로 청군 응원단의 기세가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청군 응원단은 좀처럼 기세를 올리지 못했다. 응원단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관람객으로 참석한 사람들 같았다. 양쪽 옆에 앉은 가나에와 소노코 역시 입을 꾹 다물고 앞을 응시할 뿐이었다.

두 역사는 다시 스모장 가장자리, 각자의 자리에 섰다. 삼판양승제. 이제 마지막 한 판을 이기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다.

“우메하라 선생님을 응원해야 하지 않아? 우리 편인데?”

리에의 말에 가나에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멀뚱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고개를 제자리로 돌려버렸다.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어.

이건 아니야.

왜 아무도 우메하라 선생님을 응원하지 않는 거야.

리에는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바로 그 순간 백군 응원단 쪽에서 연대장 사사키가 소리쳤다.

“긴쭈형! 조센징!”

순간 좌중은 얼어붙은 듯 침묵에 휩싸였다. 기세를 올리며 목이 터져라 군가를 불러대던 백군 응원단들이 일순간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순간은 아마 1초나 2초쯤 되었으리라.

사사키가 두 팔을 활짝 펴들었다. 그의 양손을 따라 남자의 가죽 허리띠가 뱀처럼 길게 펴졌다.

“조센징 긴쭈형의 이름이 적힌 허리띠다.”

그때 백군 응원단 속에서 한 남학생이 소리쳤다.

“우메하라 게이이치는 가짜다. 조센징 긴쭈형!”

“구로자와 선생님, 조센징을 꼬라박아!”

“조센징을 꼬라박아!”

화산 같은 열기가 먼저 터져 나온 곳은 백군 응원단이었다.

“긴쭈형! 조센징! 긴쭈형! 조센징! 긴쭈형! 조센징!”

백군의 함성이 스모장을 덮고, 운동장을 덮고,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 그때까지 상황을 몰라서 혹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웅성대던 청군 응원단에서도 고함이 터져 나왔다.

“조센징 꼬라박아 버려라!”

“긴쭈형을 꼬라박아라!”

“긴쭈형 사기꾼! 도둑놈!”

“조센징은 사기꾼, 거짓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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