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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3 10:21 수정 : 2014.01.28 10:22

조두진 소설 <9화>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에서 청군과 백군은 하나가 되어 ‘긴쭈형’과 ‘조센징 꼬라박아’를 외쳤다.

리에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대는 학생들 속에서 양쪽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가나에와 소노코 역시 목청껏 ‘긴쭈형 조센징’을 외쳐대는 중이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리에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리에는 학생들의 원색적인 욕설과 증오로 가득한 악다구니가 난무하는 가운데, 제 몫의 욕설과 고함을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무엇이라도 한마디 지독한 욕을 퍼부어주지 못한다면 괜히 억울할 것만 같았다.

백군 아이들은 진작부터 일어서 있었고, 이제 청군의 아이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긴쭈형과 조센징을 외치기 시작했다. 리에는 뱀에 놀라기라도 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거짓말쟁이! 배신자! 더러워!”

응원단의 함성과 광기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우메하라 게이이치 선생님의 검붉은 얼굴이 비로소 리에의 눈에 들어왔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우메하라의 검고 붉게 상기된 얼굴을 타고 떨어졌다. 그는 더 이상 생기 넘치는 희고 아름다운 남자가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우메하라는 갑자기 딴 세상에 떨어진 사람처럼 기괴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토하며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구로자와 선생님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놀란 구로자와 선생님은 재빨리 몸을 피했고, 우메하라는 구로자와 선생님이 서 있던 곳까지 달려와 제풀에 엎어지더니 모래밭 밖으로 나뒹굴었다. 마치 통나무가 넘어져 구르는 것 같았다. 그의 큰 덩치가 모랫바닥에 처박히고, 두 번이나 굴러 모래밭 밖으로 내동댕이쳐졌을 때 리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양쪽 응원석은 침묵에 휩싸였다.

우메하라는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청군 역사도, 백군 역사도, 교장 선생님도, 심판도, 누구도 엎드린 우메하라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침묵은 길고 끔찍했다. 우메하라의 젖은 등에서 땀이 번들거렸다.

우메하라는 한참이 지나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는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잘 어울려. 모래를 잔뜩 처바르고 있으니.”

소노코가 속삭였다.

“그러게, 조센징다워.”

가나에가 받았다.

무릎을 꿇고 앉은 우메하라는 누구에게도 시선을 두지 않고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내가 너희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했니?”

여전히 도쿄 말씨였지만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우메하라는 천천히 일어나 널브러진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 들고 교사를 향해 걸어갔다. 운동장에 떨어진 우메하라의 허리띠를 흙바람이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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