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 소설 <10화>
패전 후 일본으로 간 나쓰메 리에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도쿄의 낡고 좁은 아파트에 살면서 강이 있는 풍경을 그렸다. 강 그림을 그렸지만 그녀의 그림에는 강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허연 강바닥을 드러낸 풍경이었다. 때로는 강바닥에 갇힌 나무둥치 같은 것들이 그녀의 그림 소재였다. 가끔이기는 하지만 깨진 병이나 유리 조각 같은 것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강 그림의 왼쪽이나 오른쪽 하단에는 언제나 야윈 여자가 서 있었다. 머리가 길고 몸이 호리해서 여자임을 알 수 있었지만, 여성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여자는 강물이 흐르지 않는 강, 먼지가 날리는 강바닥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림에 보이는 여자의 모습은 언제나 뒷모습이었다.
NHK 방송 기자가 리에와의 인터뷰에서 ‘선생님의 그림에는 늘 야윈 여자의 뒷모습이 등장합니다. 혹시 무슨 까닭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물었지만, 리에는 쥐어짜듯 얼굴을 찌푸렸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리에는 1989년 도쿄에서 연 전시회 팸플릿에서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내게도 한때는 좋아하는 일이 있었고, 미칠 듯 몰두했던 사람이 있었다. 넘실대는 강물 위로 물고기들이 하얀 비늘을 반짝이며 뛰어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부푼 강물에 발을 담그면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물빛으로 물들 것 같던 날들이었다.
우메하라 게이이치.
내가 그에게 그토록 몰두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평범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때 열여섯 살 소녀였다. 그러니까, 나 혼자만 그처럼 우메하라 게이이치에게 몰두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학교의 많은 여학생들이 우메하라 선생님을 좋아했다. 개중에는 나처럼 남몰래 사랑을 키워가던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마쓰모리 카나에, 사이키 소노코는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선생님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표정에서, 혹은 애써 외면하는 얼굴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선머슴처럼 구는 우에다 마유코 역시 속으로는 우메하라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선인인 이와미야 게이코까지도 밤마다 사랑의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어떡하겠는가, 비록 마유코가 선머슴 같은 외모와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다고 해도, 게이코가 조선인이라고 해도 그 나이 때의 여중생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열여섯 살 소녀답게 우메하라 게이이치를 사랑했다. 그러나 나는 열여섯 살 소녀답게 그와 이별하지는 못했다.
그를 버린 후에도 밋밋한 사랑은 있었다. 내게 사랑을 고백해온 사람도 있었고, 한동안 어정쩡한 관계를 이어간 사람도 있었다. 이별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처럼 미칠 듯한 사랑의 열병이나 견딜 수 없는 이별은 없었다. 나는 우메하라 게이이치와 헤어진 것이 아니라, 그를 버렸다.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어쩔 수 없는 이유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믿었다.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고 믿었다. 그런 확신은 나이가 드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고, 지금 역시 변함이 없다. 그러나 내가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메하라 게이이치.
그를 버림으로써 나는 사랑을 잃었고,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물고기가 살 수 없는, 허연 강바닥을 바라보며 나는 매일매일 야위어갔다. 부풀어 터질 것 같았던 내 몸은 볼품없이 말라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푸른 물빛으로 물들것 같았던 내 몸은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나는 평생 흙먼지 날리는 강바닥을 바라보며 야윈 몸으로 서 있었다.”
나쓰메 리에는 그해 가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일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그날 죽은 사람은 우메하라 선생님이 아니라 나였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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