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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8 09:43 수정 : 2014.02.04 09:47

조해진 소설 <2화>



기억합니다.

당신과 저는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차들이 다니는 팔 차선 도로가 나올 때까지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녁을 먹기 전이나 먹은 직후, 어둠이 그리 촘촘하지 않은 그물에 걸러진 듯 큰 조각들로 대기를 떠돌던 시간, 우리는 잡은 손을 놓는 법 없이 그저 앞을 향해 걷습니다. 그리 긴 산책이 아니었는데도 당신은 수시로 멈춰 서서 제 옷의 단추를 다시 잠가주거나 흘러내린 양말을 올려줍니다. 괜찮아? 숨차지 않아? 더 걸을 수 있겠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기도 하면서요. 그럴 때, 우리의 머리 위로는 늘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비행기가 구름을 헝클이며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김포공항이 한국의 국제공항이었던 그 시절, 김포와 서울의 경계에 위치했던 그 동네에서 비행기란 주전자나 유리컵처럼 수시로 눈에 들어오는 일상적인 사물과도 같았습니다. 비행기들은 항공사의 이름이나 마크가 보일 정도로 낮게 날기도 했고 밤에는 그 어떤 별보다 밝게 반짝이기도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화장실로 걸어갈 때나 당신의 하교를 기다리며 거실 창가에 앉아 동화책을 읽을 때, 그리고 한밤중에 마른 이불에 오줌을 지리고 깨어난 뒤 울먹일 때도 비행기는 마치 꼭 있어야 하는 풍경의 일부처럼 제 머리 위 어딘가에서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을 내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세상 어디에서든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를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공항에서 멀어질수록 비행기는 더 높이 올라가게 되어 있다는 걸,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그 굉음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던 거죠. 저는 그 동네에서 태어났고 그 동네에서 사는 오 년여 동안 다른 도시, 다른 동네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간혹 진료를 받기 위해 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갈 때도 있었지만 그런 날엔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 같은 건 없었죠. 설사 하늘에 시선이 갔다 해도 병원이란 공간이 환기하는 긴장감에 짓눌린 탓에 의식적으로 비행기를 찾지는 못했을 거예요.

부모님은 남들보다 약한 심장을 갖고 태어난 막내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꺼리셨죠. 그들이 허락한 제 세계의 끝이 바로 팔 차선 도로였습니다. 그 도로를 가로지르던, 수십 개의 계단들이 가파르게 연결된 육교가 제게는 더 이상의 전진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 그곳을 지키는 육중하고도 상징적인 조형물처럼 보이곤 했습니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서 당신은 곧잘 절 업습니다. 저보다 아홉 살이 많긴 하지만 그 무렵엔 당신 역시 아이일 뿐입니다. 가슴은 납작하고 귓등에는 솜털이 돋아 있습니다. 제가 업혀 있는 당신의 등은 좁고, 무르지 않은 뼈는 섬세하게 만져집니다. 그 등에 한쪽 뺨을 묻은 채 저는 유치원에 대해서, 가끔은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에 대해서 주절거립니다. 가고 싶다고, 데리고만 가준다면 아무 사고도 일으키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자신이 있다고, 저는 항상 그렇게 말합니다. 진심이 아닌 말은 없었습니다. 그 모든 열망은 그 순간만큼은 가장 간절했고 또 제 전부였습니다. 당신은 안 된다거나 포기하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래, 알았어.

엄마한테 말해볼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응?

당신은 말하고 저는 웃습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당신은 저를 올려서 업기 위해 자주 멈춰 서지만 제 몸이 아래로 처지는 간격은 점점 더 짧아집니다. 당신의 몸은 땀에 젖어가고 숨소리도 거칠어집니다. 그래도 저는 당신의 등에서 내려오겠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으로 가는 길이 무한히 길어지길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갈수록 집이 멀어지기를,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지기를, 때로는…….

우리의 여행,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어쩌면 이 문장을 읽었을 때부터 이번 여행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저처럼 업고 업힌 채 어딘가로 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제 삶의 가장자리에서 잔잔하게 일렁이며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되비추었죠. 그러니 지금 저는 혼자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끊어졌던 우리의 여행을 완성해가고 있는 거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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