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소설 <5화>
그 저녁, 당신은 식탁이 다 차려질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닫힌 방문 앞에서 한 끼 굶는다고 죽지는 않는다고 심술궂게 말하고, 굳은돌처럼 식탁에 앉은 어머니는 수저를 움직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당신이 가방까지 싸들고 집을 나갔다는 걸 알아차린 건 밤 열 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아버지는 손전등을 챙겨 나가고 어머니는 진정되지 않는 목소리로 이곳저곳에 전화를 겁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오자 더더욱 초조해진 어머니는 경찰서에 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아무런 성과 없이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자며 어머니를 만류합니다. 저는 침대에 누워 있긴 하지만 잠든 척하고 있을 뿐, 정신은 멀쩡합니다.
돌아오지 마.
이불 속에서, 저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멀리, 멀리 가버려. 전부…….
전부 잊어버려, 제발.
자정이 다 되어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제 기도도 끝이 납니다. 슬그머니 침대에서 내려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는 그 틈새로 저는 봅니다. 고개를 숙인 채 가늘게 떨고 있는 당신과 그 옆에서 당신의 어깨를 감싸주는 어머니, 그리고 돌아선 채 허공을 응시하는 아버지를…….
그날의 제 기도를 당신이나 부모님에게 고백한 적은 없지요. 그러니 그날 이후에도 그 기도가 종종 반복되곤 했다는 걸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기도는 거짓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 문틈으로 당신을 훔쳐보며 당신의 머리칼과 옷에서 떨어지던 투명한 물방울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그러한 것처럼. 아니, 제가 아름답다고 느낀 건 당신뿐입니다. 왜 화가 나면서도 기쁜 것인지, 어떻게 실망감과 안도감이 교차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것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 저는 그저 당신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있었습니다.
빗줄기는 이제 살갗이 아플 정도로 굵어졌습니다. 버스로 되돌아가 자리에 앉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십니다. 빗물이 들어간 커피는 끔찍하게 맛이 없습니다. 오래 묵은 커피콩을 사용했는지 상한 맛이 나기도 합니다. 기름과 설탕으로 범벅된 도넛도 입에 안 맞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으려면 일단 배를 채워야 하지만 식욕은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어두운 창문에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에 반 이상 남은 커피와 도넛을 들고 있는 제 모습이 비칩니다. 서른여덟, 창문 속 여자는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
닮았구나.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했죠. 제 얼굴에 당신의 과거가 있다고,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환하게 웃으며. 그리고 당신이 떠난 이후론 슬픔을 억누른 목소리로, 흔적을 찾듯 더듬는 눈길로, 닮았구나, 그들은 같은 말을 다르게 합니다. 다른 어조와 다른 억양으로, 다른 감정을 실어 말합니다. 서른 살 이후로 당신은 더 이상 나이 들지 않고 있으니 서른여덟 살의 저는 이제 당신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되어버린 셈이군요. 그렇다면 당신의 사라진 미래는 저 차창 안에 있는 건가요. 저토록 좁고 어둡고 고독한 곳이 당신이 있는 곳인가요. 말해주세요. 그곳에선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다고, 그래서 비에 젖어 추워할 일도 없으며 발이 시리지도 않다고, 그런 곳이라고…….
*
휴식 시간이 모두 지나가고 버스는 다시 출발합니다. 이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세 시간여가 남았을 뿐입니다. 볼일을 보고 배도 채운 승객들은 실내조명이 꺼지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시 잠들 준비를 합니다. 누군가는 외투를 뒤집어쓰고 누군가는 휴대용 베개를 목 뒤에 놓습니다. 야구 모자로 얼굴을 가리는 사람도 있고 담요로 온몸을 칭칭 감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사실 불안합니다. 남들처럼 쉽게 잠들지 못하는 건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불안감은 기묘해서, 그 밑바닥에는 설명하기 힘든 설렘이 있습니다. 버스가 멈추면 티켓에 찍힌 목적지와는 전혀 다른 도시가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기대감이 가슴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장거리 버스의 또 다른 매력이 바로 이 불확실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에 호감이나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저 같은 사람이 이 나라에 정착하게 된 것도 돌이켜보면, 순간순간의 불완전한 사건들이 예측되지 않는 실험처럼 저를 이끌어왔기 때문일 거예요.
기억합니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저는 자발적으로 외출을 삼가게 됩니다.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학년의 아이들보다 한 살 위지만 학교에서 저는 늘 주눅이 든 상태로 주어진 시간을 견딜 뿐입니다. 저는 늘 혼자 있어요. 뛰어다닐 수도 없고 심지어 빠르게 걸어서도 안 되는 입술이 파란 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함께 뛰어놀지 못한다는 건, 또래들 사이에서는 외톨이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입니다.
그 무렵엔 당신도 저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습니다. 당신은 아침 일찍 등교해야 하고 제가 잠든 뒤에나 귀가하니까요. 가끔은 의도적으로 저를 피했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저녁 산책은 중단된 지 오래고 단둘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밥을 먹을 기회도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주며 물끄러미 저를 내려다보던 당신의 시선은 더 이상 제 삶의 일부가 아닙니다. 당신이 제 옷의 단추를 여며주거나 흘러내린 양말을 올려주는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예전보다 더 자주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때로는 아무런 의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도 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저와 눈이 마주치면 입가를 올려 미소를 지어 보이긴 하지만 그 미소는 당신의 시선이 저에게서 벗어나 다른 곳을 향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맙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이해합니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른도 아닌 여고생에게 동생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은 마음속 반항심과 충돌하며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변해갔을 것입니다. 동생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래요, 당신은 결국 그림을 포기합니다. 화구들을 모두 처분하고 그토록 아꼈던 피카소의 화첩은 헌책방에 팝니다. 책상 아래에 겹겹이 쌓아뒀던 스케치북과 그림을 그려서 받은 각종 상장들, 조잡한 액자에 넣어둔 습작들을 내다 버립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술과 관련 없는 학과에 입학할 때까지 당신은 단 한 번도 캔버스 앞에 앉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그림을 그리는 당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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