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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05 09:34 수정 : 2014.02.10 13:32

조해진 소설 <6화>



대학 졸업 후 무역 회사에 취직한 당신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삼 년 만에 결혼을 결심합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은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는 대학원생이라고, 거실에 모여 앉은 저와 부모님에게 당신은 덤덤하게 말합니다. 만난 지 불과 두 달밖에 안 된 사람과 곧 결혼하겠다는 당신의 말에 부모님은 당황하긴 하지만 반대하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그즈음 저는 많이 호전되어 있었으니까요.

당신이 제게는 형부가 될 사람을 집으로 데려온 날은 그해의 추석이었습니다. 그는 서른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꺼운 안경을 쓴데다가 새치가 많아서인지 당신에게는 삼촌뻘처럼 보입니다. 그가 돌아간 후 아버지는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하고, 당신은 괜한 트집을 잡지 말라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합니다. 예전만큼 젊지도, 혈기가 넘치지도 않는 아버지는 당신의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조금씩만 울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를 따라 미국에 갈 계획이라고, 당분간은 귀국할 여유가 없을 거라고 밝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추석 이후 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어요. 당신이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결혼과 이주를 결정한 것 같아서였을까요. 추석날 목격했던 한 장면, 형부 될 사람이 당신의 입가에 묻은 사과 껍질을 엄지로 닦아주려 하자 당신이 순간적으로 얼굴을 외로 틀어 그 손길을 피하던 장면이 마음에 걸려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확신보다는 그저 그림이 없는 삶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다는 욕망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닌지, 고등학생이 된 저는 미심쩍기만 합니다.

아무려나 당신은 계획대로 그해 연말에 결혼식을 올리고 곧바로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날 이후 저는 제 삶이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린 후 엉성한 바느질로 봉합해버린 가벼운 자루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어머니는 전에 없이 자주 소지품을 잃어버립니다. 당신에게서 일주일 넘게 전화가 오지 않으면 서울에서 우리는 불안합니다. 기다림의 끝에서 당신에게 전화를 했을 때 통화가 연결되지 않아도 그만큼 큰 불안이 밀려옵니다. 방학 때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큰 명절이라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도 당신은 한국에 오지 않습니다. 당신은 말하지 않지만, 그건 생활이 빠듯해서라는 걸 부모님과 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입니다. 그때…….

그때, 당신은 불완전한 신분증을 들고 어디를 헤매고 다녔던 건가요.

그곳에서 혹시, 저를 부르지는 않았나요.

난 당신을, 당신의 말, 당신의 지식, 나의 목소리, 나의 피를 구분할 수 없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완성하지 못한 꿈을 기억하고 말하고 기록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지요. 우리는 닮았으니까, 우리에게는 함께 걷던 길이 있었으니까, 제가 갈 수 있는 제 세계의 가장 먼 곳에는 늘 당신이 있었으니까…….

상상이 됩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어리석구나, 라고 말하며 아프게 웃어 보였을 당신의 얼굴이…….

*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저는 눈을 뜹니다.

굵은 침을 삼키며 정면을 응시하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의 실내조명이 모두 켜져 있습니다. 버스는 비상등까지 켜놓고 갓길에 정차 중입니다. 김이 서린 차창을 소매로 닦자 버스 밖에서 흑인 여성이 갓난아기를 업고 달래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가 깜빡 잠이 든 사이 갓난아기가 경기를 일으켰던 모양입니다. 미국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는 승객들은 대부분 가난한 학생이거나 유색인종입니다. 창밖의 저 흑인 여성은 스무 살이 채 안 돼 보입니다.

낯선 곳에서 잠이 들면 저는 간혹 이렇듯 고통스럽게 깨곤 합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심장 수술 이후부터였을 것입니다. 수술 후 마취가 풀릴 즈음,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미국에 있어야 할 당신이 제 눈앞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맨발이었고 얼음이 띄엄띄엄 떠다니는 강물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도 당신의 발에 대한 걱정만큼은 크고 생생했습니다. 겨울에는 양말을 두 개씩 겹쳐 신고 다녀야 할 만큼 당신은 추위를 잘 탔으니까요. 저는 당신의 등 뒤에서 위험하다고, 어서 나오라고, 목에 핏대가 돋도록 연이어 소리를 질러댔지만 당신은 제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토록 절실하게 부르는데도 당신이 모른 척 앞만 보며 걷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얼굴이 온통 젖을 만큼 울고 또 울다가…….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 회복실의 밝은 조명이 아프게 눈을 찔렀습니다. 의식은 돌아왔으나 아직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깨어난 순간 곁에 있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머니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절대적인 적막, 감당하기 힘든 통증, 꿈쩍도 하지 않는 몸, 그 상황은 조금 전 지나온 악몽보다 더 지독한 악몽 같았죠.

회복실에서 일반 입원실로 옮겨진 뒤에도 부모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간혹 친척들이 찾아오긴 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부모님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 버림받은 건 아닌가, 의심이 시작됐습니다. 당신이 내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 먼 나라로 떠나버린 것처럼 부모님도 나와 내 병에 질려버린 거라고, 그래서 두 사람이 합의하여 나를 외면하기로 한 거라고, 무력하게 누워만 있어야 하는 병실에서 저는 그런 과장된 상실감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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