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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06 09:53 수정 : 2014.02.10 13:33

조해진 소설 <7화>



아둔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닷새가 지나서야 병실에 나타난 아버지가 제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는 아직 미국에 있다. 안 본 사이 노인이 되어버린 그는 손마디마저 거칠고 가늘어져 있었습니다. 엄마가 오면 말해다오. 거기까지 말하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버지가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나쁜 직감이,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아서 마구잡이로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 같던 몸 안으로 촘촘히 스며들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제 귀는 여전히 건강했고, 도대체가 아플 기미도 보이지 않았죠.

엄마는 미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엄마를 보면 꼭 말해다오. 정희가, 정희는, 네 안에 있다고…….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흐느꼈습니다. 머리칼이 거의 다 빠진 그의 휑한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저는, 진짜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어서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되뇌었습니다.

그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늙은 남자의 울음과 젊은 여자의 중얼거림이 섞이고 교차하는 병실 안은, 그러나 시끄럽지 않고 적막했습니다.

일주일 뒤, 저는 무사히 퇴원했습니다. 병실 밖에는 또 다른 병실들이 있었고, 끝나지 않은 꿈속에서 저의 삶은 다시 이어졌습니다. 걷고 또 걸어야 했지만 때로는 우두커니 서서 시린 발만 가만히 내려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저는 로스앤젤레스의 화창한 여름 한가운데서 그녀의 편지를 읽게 된 것입니다. 내 핏속에 흐르는 당신의 기억, 당신의 침묵.

*

서른 살의 당신은 아주 작은 상자 안에 담겨 당신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당신을 나무 아래 묻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당신의 젊은 살과 피를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그 안에 숨겨둡니다. 당신이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말들, 완성하지 못한 일들, 만날 가능성이 있었던 사람들, 그 모든 것을 모르는 채로. 쓰이지 못한 역사,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그 역시도. 당신을 묻고 온 날, 우리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 저는 서른 살의 당신을 만나러 공항으로 갑니다. 부모님은 출국 게이트 밖에서 손을 흔들며 말합니다. 하고 싶은 걸 해라. 날개가 달린 사람처럼 온 세상을 휘저으며 마음껏 살아라. 멀리, 멀리 가거라.

게이트 밖에서, 아버지는 낮게 부릅니다.

정희야…….

그사이 그에게는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 채 웃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아버지는 한 번 더 당신의 이름으로 저를 불렀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당신이 살았던 집을 찾아가고, 당신과 친분을 맺은 적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만나러 다닙니다. 서울의 가족들 모르게 이혼한 뒤 비자 갱신을 못 하여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었던 당신은 생의 마지막 일 년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만 보내야 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한인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일하기도 했고, 교포 자녀들에게 한국어 문법을 가르치기도 했죠. 저는 당신이 남긴 수첩과 일기와 메모를 읽고, 그리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습니다. 그때껏 살면서 단 한 번도 하고 싶은 게 없었던 제게 처음으로 의욕이란 게 생깁니다. 푸르고 뜨거운 그 감정은 낯설어서 조심스럽지만 절 살아 있게도 합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혼잣말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제가 들은 스물일곱 살부터 서른 살까지의 당신의 삶은 이렇습니다. 주로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다녔다는 것, 교회 앞에서 빈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구걸하는 젊은 여인에게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준 적이 있다는 것, 다운타운에 위치한 미술관에 가는 걸 최고의 호사로 여겼다는 것,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놓곤 했지만 날짜가 다가오면 번번이 취소했다는 것, 다운타운에서 강도의 총에 맞은 날도 당신의 백에는 예매한 비행기 티켓이 들어 있었다는 것……. 제가 찾을 수 있는 당신의 흔적은 거기까지가 전부지만 저는 귀국하지 않습니다. 미국에 온 지 두 달 만에, 그리고 저는 당신과 이 주에 한 번씩 만나 언어 교환을 했다는 인도계 미국인을 만납니다. 그는 당신의 노트북을 수리해준 전자 상점의 직원이었죠. 퇴근 후 아시아 드라마를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여서 당신과의 그 개인적인 언어 수업이 무척 소중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당신이 자신 없는 발음인 알(R)이나 브이(V)가 들어간 단어는 무심결에라도 쓰지 않을 만큼 자존심이 강했다고 말하며 그는 웃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일 때 드러나는 하얗고 긴 목은 풀잎 같았어요. 어떻게 저런 목으로 숨도 쉬고 인사도 하고 말도 할 수 있는 걸까, 의아하게 보곤 했어요.

그 말에 저는, 오래전 당신에게 업혔을 때 느껴지던 당신의 섬약한 뼈를 떠올렸습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진해지던 당신의 땀 냄새, 거칠어지던 숨소리, 하지만 단 한 번도 내릴래? 라고 묻지 않았던 그 긴 시간도 함께. 그 사람은 그렇게 느닷없이 제 삶으로 들어왔습니다. 가까워진 뒤 그와 결혼하여 미국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러니 당신의 자력(磁力)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혹은 당신이 떨어뜨린 한 줄기 실이었을까요. 저쪽에서 당신의 실 뭉치는 고요하게, 그러나 한 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여왔을 테니까요.

그렇게 십칠 년을 이 나라에서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고독과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은 제2의 언어 자체가 아니라 제2의 언어로 인사하는 방법, 축하하고 위로하는 방식, 농담하는 기술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은행과 대중교통과 병원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했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삶에도 내 몸을 맞춰가야 했습니다.

간혹, 얼음이 떠다니는 찬 강물 위를 맨발로 걷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 년여 전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제가 본 것도 바로 그 얼음 강물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풍경이 얼음 조각이 떠다니는 강물이 아니라 구름이 흘러가는 밤하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저는 그곳 어딘가에 당신이 있을까 봐 감히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거기에선 발이 시릴 테니까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데 주위엔 아무도 없고, 심지어 어머니조차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한 뒤에야 저는 알았습니다. 제가 작은 죽음을 경험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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