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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01 19:35 수정 : 2014.02.05 17:19

탁현민 공연연출가

[토요판/연애]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20대 남녀 학생들에게 “그 남자(여자)가 가장 싫을 때”를 물은 적이 있었다. 거짓말할 때, 양다리 걸칠 때, 피시방 드나들 때 등 다양한 대답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압도적 1위를 차지한 응답은 ‘허세남’이었다.

허세남.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남자가 허세남이라는 사실은, 약간의 허세를 달고 사는 내게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사실 남자의 허세는 여자의 내숭만큼이나 ‘기본 옵션’ 아니겠는가. 그 허세가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니 조금 과장을 섞어 표현하면, 공포스러웠다.

남자라면,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허세 한번 부리지 않은 남자가 얼마나 될까 싶다. 남자에게 허세는 전혀 낯설지 않다. 허세와 유혹, 허세와 용기, 허세와 배려, 허세와 친절, 허세와 애정표현을 매 순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남자는 생각보다 드물다. 아니 오히려 허세야말로 남성성, 기사도 정신, 뜨거운 애정의 가장 드라마틱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생각보다’ 순박하며, ‘생각보다’ 솔직한 구석이 있는 보통 남자들 말이다.

남자의 허세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내가 이 ‘허세남’들을 다소나마 이해하고 보듬으려 한다고, 너도 그렇고 그런 한 명의 허세남일 뿐이라며 매도할 생각은 잠시 접어주시고 한번쯤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남자의 허세를 비웃는 여자들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느냐 말이다. 잘생기고 멋진 남자가 돈을 잘 쓰면 ‘잘생기고 멋지고 통 크고 능력있는 오빠’가 되고, 못생기고 별로인 남자가 돈을 잘 쓰면 “못생기고 별로인데 ‘허세 쩌는 색휘’”가 되는 어떤 여성들의 구분법은 사실 좀 못마땅하다.

어찌 됐든, 나는 남자의 허세에 대해 이렇게 변명을 하고 싶다. ‘생각보다’ 순박하고 솔직한 구석이 있는 이들 말이다. 어떤 사람들이 “허세 있는 남자가 순박하다고?” 묻는다면 “보세요, 허세가 많은 남자일수록 여자들이 싫어한다고 하니 허세가 많을수록 연애 경험이 없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순박할 수밖에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해주겠다.

이 순박한 남자들은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들 앞에서라면 보통 때보다 훨씬 용감해지기 마련이고 객기와 용기와 허세가 이상하게 뒤섞여버린 상황을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어디서 본 영화를 과하게 흉내내거나, 로맨틱과 느끼함을 구분 못하기도 하며 정중함과 필요 이상의 친절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둘이서는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엄청나게 주문한다거나, 집에 데려다 준다면서 길을 잃고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는다거나, 쥐뿔도 없으면서 나중에 원하는 건 다 해줄 테니 걱정 말라며 치는 큰소리는 어떤 여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유치찬란한 허세로 보일 수는 있겠으나, 아마도 그 남자에겐 아주 진지하고 조심스럽고 솔직한 애정고백이거나 살 떨리는 구애의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

모쪼록 여성들이여, 그놈의 허세, 그걸 유혹이라 하고 있는 그 순진함도 한번쯤 생각해 주기를, 부디 그래 주십사 하는 것이다.

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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