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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5 20:01 수정 : 2014.02.05 17:18

탁현민 공연연출가

[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 주제넘게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했던 죗값일 뿐, 절대 내키는 일이 아니다. 내 고민, 내 걱정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남의 고민이라니…. 무거운 표정으로 수업이 끝나고 잠깐 시간 좀 내달라고 할 때마다, 없는 약속을 만들어내고 때론 한국말 잘 못한다며 빠져나가지만 가끔은 딱 걸려서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할 때가 있다.

학생들의 고민은 대개 두 가지다. 취업과 연애, 먹고사는 일과 사랑하며 사는 일. 당연히 둘 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먹고사는 일이야 큰 욕심을 버리라는 참 빤한 충고를 한다 해도, 사랑하며 사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고민을 들고 오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묻는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냐고, 어떤 사람을 사랑하느냐고, 어떤 사람이면 좋겠느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하다. 편한 사람, 날 위해주는 사람, 나만 바라보는 사람, 다들 그런 사람을 기다리고 바라고 있다고. 당연하다. 어쩌면 인생은 나를 위해주는 세심하면서도 편안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과의 사랑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달콤하고 충만하고 애틋하고 정겹지 않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늘 나를 편하게 해주고 쉴 수 있게 해주고 그것으로 충분하게 해준다. 나의 존재로 상대가 충만함을 얻게 된다는 것,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에 있다. 그러니 우리 시대의 가객 김광석은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절창을 남기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따금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사랑노래 끝자락이 서늘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 가객이 “사랑이라는 이유로 하얗게 밤을 새우고, 사랑했지만 그대는 몰랐고,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눈물이 흐르는 아픔”이야말로 사랑이라고 노래하기도 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뭐지?

때로 사랑은 슬프고 어둡고 무겁다. 사랑할수록 가슴 아프고, 절절하기 마련이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르고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너무나 사랑해서 이별을 예감하기도 한다”는 고백은 짝사랑의 헌시가 아니라 서로 너무나 사랑해서 느끼는 불안이다. 그 불안과 불편함. 슬프지만 그게 사랑의 진실이 아닐까도 싶어진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그 절절한 노래가 사실은 “너무 아플수록 사랑이다”는 것을, 사랑의 본질은 아름다움에 있지 않고 슬픔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아름답고 따뜻하고 편안함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채는 것이다.

겨울이다. 여전히 사랑하며 사는 사람보다 사랑도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편한 사람, 날 위해주는 사람만 찾는 학생들에게 아니 내게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편한 사람 찾느라 자기가 누군가를 편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을 좀체 하지 않는 건 아닐까?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해주며 사랑이란 조금 불편하고 불안하고 슬프기도 해야 하는데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사랑도 편하게 하고 싶은 시대가 괜히 불편해지는 그런 겨울이다. 그래서 좀 더 춥다.

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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