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얼마 전 <최고탁탁>이라는 팟캐스트를 녹음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는 일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며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 말은 연애만 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게만 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 말은 어떤 좌절과 절망이 있어도 사랑하며 사는 것만이 내가 살아 있는 이유가 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대선이 있었던 2012년은 ‘정치의 해’였다. 굳이 ‘쫄지 마 씨바’라며 수염 가득한 남자가 나타나 “닥치고 정치”를 외치지 않았어도 총선과 대선이 연거푸 있었던, 말 그대로 ‘정치찬란’한 한해였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사랑 또는 이별에 대한 고민을 잠시 접어둔 채 ‘우리’와 ‘시대’와 ‘세상’을 고민한 한해였으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선택한 한해였으며, 무엇보다 누구든 어떤 정치인을 사랑한 한해였다. 그리고 그해, 남녀 간의 사랑에 2등이 없듯이 선거도 2등은 없어서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졌다. 언젠가 이겨도 멋지게 이기고 져도 멋지게 져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져보니 알겠더라. 세상에 멋지게 지는 것 따위는 없었다. 지는 것은 초라하고 쓸쓸하고 애잔할 뿐이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을 원망하게 될 뿐이다. 실패한 연애는 필연적으로 내가 사랑한 그녀(또는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사랑했던 상대를 탓함으로써 나의 순정을 보호하고 순결했던 상대를 천박하게 만들어 연애 실패의 이유로 돌리는 것이다. 졌던 사람 대부분이 그랬고 여전히 그러고 있다. 물론 아주 좋아한 사람과 잠깐 좋아한 사람과 좋아하는 척한 사람이 다 다른 모습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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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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