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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10 19:38 수정 : 2014.02.05 17:06

[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누군가에게 끌리기 시작할 때,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신뢰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로 해야 하는 것과 몸으로 해야 하는 것을 구별지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서로에게 끌리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낼수록 멀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걸 씹다 버리는 껌처럼 툭 말로 내뱉고, 때론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알게 해주어야 할 순간에, 사랑한다 손편지를 써 보내며 ‘내 마음 알지?’ 하면 그처럼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기대감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또 없다. 그러니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과 몸을 언제 써먹느냐(?)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연애 관계에서 말이 필요한 때는 분명하게 의사를 나타내야 하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뭘 하면 좋고 뭘 하면 싫은지. 상대가 감으로 넘겨짚거나 오해할 만한 여지가 있는 것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상대가 상처 받을까봐 내가 싫더라도 성의를 봐서 그쯤은…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깊어지면 결국은 그 하찮은 걸로 투닥투닥거리게 된다. 초밥 좋아하는 줄 알고 내내 비싼 초밥만 먹였는데 헤어지면서 본인은 초밥 별루였다는 소릴 듣고 와사비 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반면에 몸으로 해야 하는 것은 당장 확인시켜 줄 수 없는 것, 이를테면 신뢰라든지,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든지, 함께 꾸고 싶은 꿈 같은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들 “날 믿어, 너밖에 없어, 널 사랑해” 따위의 말들이 참으로 쓸데없는 말이다. 그런 말들은 실상은 없고 의지만 있는 말들이다. 현실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는 것이다. 그런 말들은 대부분 선언·구호·의지와 같다. 이런 건 잘 해봐야 아직 들통나지 않는 거짓말일 뿐이다. 그래서 이 말이, 아니 이 말을 했을 때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면 그건 몸으로, 실천으로 해야 한다. “나를 믿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게끔 행동해야 하며 “널 사랑해”라고 말할 시간에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연초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잠시 보았다. 지켜보는 내내, 말로 해야 하는 것과 몸으로(실천으로) 해야 하는 것을 저렇게 모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했던 수많은 말들 가운데 압권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행복시대 열겠다고 말하는 그 순간 “열어라 제발 열어라” 하는 심정의 국민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탁현민 공연연출가

반면에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 케이티엑스(KTX) 민영화 문제, 치솟는 전셋값 문제와 같은, 분명히 ‘말’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지켜봐 달라’, ‘기대한다’, ‘나아질 것이다’라며 어물쩍 넘어가는 모습도 무척이나 돋보였던(?) 자리였다. 이러니 불통 대통령이란 소릴 듣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 맞는 말이다. 통일되면 우리 모두 대박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역시 말로, 대통령이,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렇게 싼 말로 해야 할 것은 아니지 싶다. 통일도 댓글로 어떻게 해보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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