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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14 19:35 수정 : 2014.02.15 10:28

[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고 나서 며칠째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싸움이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툰 이유보다 당장 겪고 있는 불편함에 화가 나고 화가 났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나는 상황이 이어지게 된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누구에게 있든 싸움은 피곤한 일이다. 조금만 물러나 평정심을 찾고 생각해보면, 평생 사랑하며 살아도 부족한 시간에 이러고 있다는 게 아깝기만 하다. 여전히 사랑하는 서로에게 이 무슨 몹쓸 짓인가 반성도 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슬그머니 용서한다거나 혹은 용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쨌거나 나는 너 때문에 화가 났으니까 말이야!

연애중이든 결혼생활이든 반드시 찾아오게 되는 게 싸움의 순간이다. 그래도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고, 피할 수 없어도 피하는 게 좋고, 결국엔 싸우더라도 그래도 피하는 게 좋지만 이게 또 피하겠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쩌면 ‘사랑의 기술’이란 사랑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지 않는 기술이거나 싸워도 빨리 잊고 다시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진다.

사랑하는 사이의 싸움은 크게 두가지 정도인 것 같다. 애정의 깊이에 대한 불균형 탓에 정서적 불만족을 느끼고 벌이는 싸움과,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로서의 구실이나 남편 및 아내로서의 의무 같은 것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 등이다. 둘 중 싸움이 심각하게 발전하는 쪽은 ‘감정’보다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인 듯하다.

전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애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덜 치열하고 화해의 여지도 많다. 반면 관계에서 비롯한 싸움은 좀더 현실적인 이유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무척 날카롭고 무척 피곤해진다.

버트런드 러셀은 관계에 관한 현대인의 고민이 “감성적이고 무정부적인 충동인 낭만적 사랑을 사회제도인 결혼과 뒤섞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프랑스인들은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영어권 국가 국민보다 행복하다”고 썼다.(런던통신 1931)
탁현민 공연연출가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결혼만이 아니라 연애에서도 우리는 종종 감정이 아닌 관계 때문에 불화를 겪는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여자(혹은 남자)에게 왜 나를 만나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냐며 화를 내는 남자(혹은 여자)나 부모와 가족, 부양과 양육의 문제로 다투는 부부나 모두 서로가 설정한 관계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나의 애인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책무와 나의 남편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책무는 영업사원의 실적 그래프와 같기 때문에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해주기는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고 나서 며칠째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게 감정적인 문제라면 아마도 며칠 내로 서로 다시 말을 하고 이해해주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제도적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라면 상대가 원하는 만큼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실적이란 늘 그렇듯 올리면 올릴수록 기대치도 점점 높아져만 갈 것이다. 아, 현대인은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간다. 어쩌지.

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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