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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11 19:29 수정 : 2014.04.13 11:39

[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어쩌면 말이다. 모든 연애 칼럼의 문제는 연애할 대상은 알려주지 않고 쓸 데도 없는 방법만 알려준다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임을 봐야 뽕을 따고, 누울 자리가 있어야 자리를 펴지 않겠는가? 여자의 마음이 어떻고 남자의 마음이 어떻고 해봐야 개뿔, 상대가 있어야 고민할 것 아니겠는가?

더 짜증 나는 것은 그런 연애 칼럼니스트, 애정학자들은 하나같이 연애중이거나 결혼했거나 수시로 상대를 만나는 것들일 확률이 높다. 그들에게는 참 쉬운 일이라는 말이다. 이건 마치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장 일이 가장 쉬웠어요”라든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돈 버는 게 가장 쉬워요”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들이야 잘하는 일이지만, 못하는 사람은 대체 어쩌라는 거냐.

해서, 문득 생각해 보았다. 매주 꼬박꼬박 원고료를 처받으며 써먹지도 못할 연애 방법을 썼던 이 깊은 죄를 씻기 위해 여전히 괜찮게 남아 있는 그럴듯한 연애 대상을 소개해 보는 것은 어떨지 말이다. 꽤 그럴듯한 남자, 그놈을 소개하는 편이 칼럼니스트로서 부끄럼 없는 일이 아닐까 말이다.

그리하여 오늘 그놈을 소개할까 한다. 그놈은 삼십대 초반으로 키는 180㎝에 몸무게는 69㎏, 직업은 디자이너이며, 취미는 요리와 운동, 매해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할 만큼의 체력을 자랑한다. 홍대 놀이터 부근 카페 같은 개인 작업실에서 일도 하고 생활도 한다. 음악 듣고 공연 보는 걸 좋아해서 얼마 전엔 큰돈을 들여 마크 레빈슨 오디오를 들여놓았고 공연장에도 자주 가는 모양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집의 절반은 큰 책장이며 볼 때마다 늘 새로운 책을 들고 있다. 목소리도 나직하니 듣기 좋다. 말수는 많지 않으나 가끔 작심한 듯 웃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정말이지 허리를 꺾으며 웃게 된다. 여행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일년에 여름 두 달, 겨울 두 달은 무조건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노르웨이 같은 곳에 렌트하우스를 구해 나간다. 정치적 성향은 진보인 듯싶다. 하지만 정치색을 크게 드러내기보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조용히 한다. 강정마을에 기부를 한다든지 김어준이나 강신주의 강연을 들으러 간다든지. 그렇게 지내면서 돈은 언제 모을까 싶은데 그 나이에 벌써 5억~6억 정도 자산이 있는 것을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서글서글하니 좋은 성격이지만 뭔가에 몰두하면 주변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이내 세심하게 상대를 챙기기도 하니 큰 흠은 아니다. 어떠신가, 이런 남자? 딱 이 남자다 싶은가? 이런 남자를 만나기 위해 여태 혼자 계셨던 것은 아닌가?

탁현민 공연연출가
그러나 세상에 이런 남자는 없다. 그래서 당신이 혼자인 것이다. 보라, 저 중의 절반도 갖추지 못한 남자, 아니 하나도 갖지 못한 남자가 부지기수다. 어쩌면 당신이 혼자인 이유는 남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꿈의 남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 아닌가?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다. 늘 꿈의 여자만 기다리는 건 아닌가? 연애를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상대의 장점만을 보며,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만 본다. 연애를 못하는 사람은 상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차는 상대가 없을 뿐이다. 세상의 반이 남자고 반이 여자다. 욕심만 버리면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다, 고 믿는다.

탁현민 공연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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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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