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고등학교 2학년. 자고 일어나면 몸이 쑥쑥 커지는 게 느껴지던 그때 나는 한 여학생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교복 입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엔 또래 여학생을 만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재주 좋고 겁 없는 녀석들은 공공도서관 앞 놀이터나 독서실 부근에서 데이트를 즐겼지만 대개 교회에서 편지나 주고받는 게 연애의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나는 서로 좋아 지내는 것도 아니고 짝사랑이어서 일요일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먼발치에서 그 여학생,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교회 누나를 훔쳐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누나에게 편지를 썼다. 어렴풋한 기억에 나는 ‘누나를 좋아하니까 이제부터 누나라고 안 하겠다’는 말을 썼던 것 같고 기어이 편지 말미에는 ‘사랑한다’고 적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쓰면서 괜한 떨림에 혼자 울컥했던 것도 같다. 한 장의 편지로는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아 두 장, 세 장, 열 장의 편지를 썼고 한 통의 편지로는 내 진심을 몰라 줄 것 같아 두 통, 세 통, 열 통의 편지를 매주 보냈다. 더 멋진 글을 쓰기 위해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언젠가부터 시집을 읽으며 밑줄을 그었고 시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문세와 조덕배 노래를 들으며 ‘아, 사랑이란 이렇게 찬란한 아픔이구나’ 하며 편지가 아닌 시를 쓰기도 했다. 누나는 내가 내민 편지를 받을 때마다 조금 귀찮은 눈치였지만 그조차 예뻐 보였고 가끔 맞는 주소로 보낸 편지가 반송될 때는 더 정성들여 다시 써서 부치며 편지를 읽는 누나를 상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누나의 엄마가 예배가 끝난 오후에 나를 잠깐 부르셨다. 누나의 엄마는 교회 일에 열심이신 집사님이셨고 교회 학생회의 지도교사였고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분이셨다. 교회 앞 어느 빵집에서 마주 앉아 공부는 잘하는지, 교회 생활은 어떤지 묻고 나서 누나의 엄마는 커다란 통을 내미셨다. 거기에는 이제껏 내가 보낸 편지들이 대개 뜯지도 않은 채 수북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이런 편지 우리 딸한테 보내지 마. 공부할 시간도 없고 우리 딸, 이제 고3이잖니. 게다가 누나한테 사랑한다느니 그러는 거 아냐.” 빵에 목이 메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꽤 훌쩍였던 기억이 난다. 빵 맛이 달지 않았던 것도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집에 돌아와 뜯어 보지도 않았던 편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나는 꽤나 울었다. 짝사랑 때문이라고 대충 눈치챈 엄마는 고맙게도 못 본 척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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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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