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떠올리는 것조차 힘겨운 일이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무엇보다 마음 아픈 소식이 있었다. 어느 남녀 학생이 구명조끼의 끈을 서로 묶은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다. 그 절박한 순간에 어쩌면 이미 죽음을 예감했던 그 순간에 왜 서로를 하나로 묶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짐작하건대 그 두 학생이 그렇게라도 서로를 의지하며 마지막까지 살아나길 기도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졌다. 공포와 두려움이 현실로 닥쳐오고 왜인지도 모른 채 죽게 되는 그 순간을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상상조차도 안 되는 순간에 서로를 하나로 묶었던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알 것 같아 자꾸 눈물이 났다. 두 학생이 서로 친한 관계였는지 아니면 재난 앞에서 서로를 도우려는 것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어떻게든 살아나려는 노력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내 가슴이 뜨거워진 이유는 그 절명의 순간에 그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함께였다는 사실이다. 서로를 묶었다는 것. 그것은 다만 살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그게 바로 사랑이었구나 싶었다. 참사의 흉폭한 소식 가운데 우리는 그런 사랑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주기 위해 자신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울부짖으며 아이를 찾았다는 모정, 침몰의 순간에도 괜찮을 거라 서로를 다독인 학생들, 자신보다 울고 있는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며 순서를 양보했던 남학생, 제자들을 구하느라 결국 숨진 선생님 그리고 끝내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이 가족에게 남긴 그 마지막 메시지들, 그 모든 게 바로 사랑이었다. 그들은 몇 시간도 안 되는, 아니 어쩌면 몇 분도 안 남은 시간을 사랑했고,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많은 예술작품이 짧은 기간의 사랑을 소재로 한다.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은 5일, 영화 <타이타닉>은 3일간의 사랑을 담고 있다.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단 며칠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평생을 다한 것 같은 사랑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작품을 보며 사랑은 그런 거라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이제껏 사랑이 분명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내게 사랑이란, 상대의 마음을 훔치고 나를 포장하고 상대를 기쁘게 해주는 연애의 기술이나 이성에 대한 분석이었을 뿐이다. 사랑은 그런 시시덕거림이나 낄낄대는 말장난이 아니라 목숨을 건, 아니 목숨보다 더한 마음이라는 걸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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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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