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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13 18:53 수정 : 2014.06.14 14:05

[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쓰는 순간 꼰대가 되는 거라 했는데 요즘 자꾸 꼰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싫다. 어느새 마흔을 넘기고 또 몇해가 갔으니 꼰대가 되었다는 걸 부정할 도리는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내게 자기 고민을 가져오는 학생들이 있다. 그건 아직 내가 완벽한 꼰대는 아니라는 방증이리라. 물론 세상에 남의 연애 문제에 훈수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이 없지만 이런 때야말로 내가 꼰대가 아닌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잘되면 남 좋고 안되면 내 탓이 되기 일쑤인 일이기도 하다)

얼마 전 비슷한 상황에 놓인 각기 다른 두 명의 여학생을 만났다. 둘 다 남자의 집착 때문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달리고 화를 내고 심지어 준폭행 수준까지 이른 경우였다. 헤어지게 된 이유는 달랐지만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둘의 옛 남자친구들은 몹시 닮은꼴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연애를 하다가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으면 가능하면 소문 안 나게, 아니 오히려 “내가 여자친구를 찼다”고 호기롭게 떠들기는 했다. 몹시 부끄럽거나 괴로운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참고 견디며 소주를 마시며 ‘나쁜 년’이라며 욕은 했지만 싫다는 여자친구에게 매달리고 화를 내고 심지어 폭행까지 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았다.

두 여학생의 고민을 들으며 도대체 요즘 남자애들이 왜 이럴까, 싶어졌다.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가졌던 세대가 자기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만들어지는 현상? 강한 자기애의 왜곡된 행태? 가장 위험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이십대들의 불안한 자존감? 그렇게 아마 그 여학생들의 남자친구들은 욕심 많고 자기애 강하고 불안해서 그랬던 것 아닐까? 하지만 이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 다분히 꼰대 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석적이며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흠잡을 데 없는, 하지만 꼰대스러운 말 말이다.

탁현민 공연연출가
가능하면 꼰대처럼 보이기 싫으니 나는 다른 말을 해주어야 했다. 나는 속으로 ‘얘들이 상황을 분석하고 심리를 알려달라고 내게 이야기를 털어놓은 게 아니잖아. 고민을 공감하고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 생각하며 최대한 너희의 걱정을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심지어 약간 몸을 낮추고 눈빛까지 맞추어 가며, 적당한 한숨과 그 남자애들에 대한 약간의 경멸의 투로 말했다.

“캬…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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