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어느새 여름이다. 이래저래 마음 무거운 나날이지만 그래도 휴가가 코앞이니 오늘은 여행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아니, 여행에서의 연애 이야기를 좀 해보자 싶다. 아시다시피 여행이란 익숙한 일상을 떠나 낯선 경험으로 스스로를 초대하는 일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내일 다시 사는, 팍팍한 일상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 미지의 세계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낯선 상황과 불편한 잠자리, 거친 음식까지도 마다 않고 참고 견디며 오로지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여행은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가 절정이라고. 고대했던 여행이지만 막상 떠나고 보면, 이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편한 집 놔두고 이 무슨 개고생인가 싶고 비행기를 타고 꼬박 하루를 날아왔지만 뭔가 근사한 일은커녕 하루하루 미리 짜놓은 일정에 쫓기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여행에서 혹시나 벼락같은 축복이 쏟아져 영화 <비포 선 라이즈>처럼 멋진 남자나 멋진 여자를 만날지도 몰라, 아니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지 상상해 보기도 한다. 아! 생각만 해도 떨리는 일이다. 그러니 이번 여름엔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몇가지 여행 연애 팁과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그저 간절해질 뿐이지만, 때때로 이루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하야 영화 속 만남이야 철저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지만 실제 여행에서 이런 영화 같은 만남이 있으려면 꼭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계획을 버려야 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내 여행 계획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빈틈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몇시 기상, 몇시 식사, 몇시에 어디를 보고 어디서 사진을 찍고 어쩌고 하는 그 모든 여행의 디테일들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그깟 모나리자 못 보면 어떻고 개선문 위에 올라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세상에 어떤 누구도 분주하고 바빠 보이는 사람에게 ‘작업’을 걸지는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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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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