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요즘, 한동안 지낼 생각으로 제주도에 내려와 있다. 짧은 여행이 아니라 체류와 여행 사이의 제법 긴 시간이라 여기서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내려온 사람들, 내려와서 사연을 만드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을 보면서 아, 참 감성적으로 충만한 사람들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어느 날 아침, 이곳에서 알게 된 사람과 우연히 만났는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물었다. “어디 가시나 봐요?” “동쪽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아, 네 잘 다녀오세요.” 뭐 특별할 것도 없는 인사와 대화였지만 ‘동쪽 사람’이라는 그 말이 뭔가 감성 돋는 말이라 곱씹게 됐다. 어찌 보면 참 당연한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오늘 그가 만나러 간다는 그녀는 미지의 동쪽 사람이 되어 아무 상관 없는 여행자의 마음까지 설레게 만들었다. 나도 누군가의 서쪽 사람이나 남쪽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말이었다. 이런 감성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 같다. 연애는 다만 상대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빛나게 하고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어쩌면 우리가 정말 신경써야 할 것은 운명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게 아니라 감성적으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며 사는 것 아닐까. 연애란 설렘 같은 감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잃어버린 연애 세포를 되살리기 위해 연애 그 자체에 대한 고민에 앞서 자신의 감성을 깨워야 한다. 시든 취기처럼 맥없이 고꾸라져 있는 자신의 감성을 무엇으로든 적셔주어야 한다. 무슨 소리? 연애란 오직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글쎄, 그건 스포츠거나 스포츠 같은 연애라는 게 내 생각이다. 연애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에 앞서 내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고, 사랑이란 감정은 자신의 물렁해진 감성에서만 발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가 없어 연애를 못 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의심해봄 직하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연애는 의지 반, 운명 반이다. 그나 그녀를 만나는 것은 운명으로 되는 것이고, 그나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의지가 필요한데 그 의지는 결국 자신의 감성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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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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